'국가 안보와 사생활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인터넷 사찰을 폭로해 불거졌던 이 같은 이슈가 이번엔 애플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하면서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각)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테러범의 아이폰에 담긴 정보를 볼 수 있도록 FBI의 수사에 협조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판 카카오톡 감청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가 안보와 사생활 보호의 우선 순위를 두고 정치 쟁점화한 것도 2014년 카카오톡 사태와 닮았다.
팀 쿡은 이날 '고객에게 드리는 메시지'에서 "FBI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고객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그의 입장에 변함에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 애플, '아이폰 비밀번호 해제 도우라'는 법원 명령 거부
FBI는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 리즈완 파루크의 아이폰5C에 저장된 교신내용을 확인하지 못해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은 2014년부터 아이폰에 암호화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비밀번호를 10차례 잘못 입력하면 해당 아이폰의 데이터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기능이 포함돼 있다. FBI는 애플에 데이터 자동 삭제 기능을 없애고 비밀번호를 알아낼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애플은 이 요청을 받아들이면 미국 수사기관이 불특정 다수 아이폰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에 쉽게 접근하는 길이 열린다면서 FBI에 협조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후 공화당 대선 주자도 애플을 비판하고 나서 대선 쟁점으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 선두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17일(현지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애플)그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며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상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애플은 법원 명령을 거부해 사법 처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이 정부 지시를 계속 거부할 경우 법적 공방으로 갈수 밖에 없다. WSJ는 애플이 법정 싸움에 패배한다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정보기술(IT) 업체의 정책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봤다.
◆ "카카오톡 감청 사태와 유사"
FBI 명령에 협조하라는 법원과 애플의 갈등은 한국에서 일어난 '카카오톡 감청 사태'와 판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4년 9월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수사 대상자를 포함해 3000여 명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들여다 본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반발한 카카오 가입자들이 '텔레그램' 등 다른 메신저로 이동하자 카카오는 검찰의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이용자 달래기에 나섰다. 이후 카카오는 검찰의 음란물 방치 혐의 수사와 세무조사를 연달아 받았다. 결국 당시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감청거부 선언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적법한 수사기관 요청에는 따르되, 수사 대상이 아닌 사람의 정보는 비공개 처리해 제공한다'는 절충안을 발표했다.
WSJ는 이번 사건이 테러와 연관됐다는 점에서 애플이 법원과의 싸움에서 불리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국가 안보보다 사생활 보호를 우위에 놓는 경향이 강했지만, 테러 사건과 연관된 문제인 만큼 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14년 카카오톡 감청 사건을 담당했던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도 현재 미국 법원이 내린 외국인의 정보 공개 명령을 거부해 항소 중인데, 애플 사태에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애플이 곧 항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국내 포털·통신사 정보 제공 사례는
카카오가 발표한 '투명성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다음(현재는 카카오) 이용자 계정에 대한 수사·정보기관의 압수수색은 50만7124건에 이른다. 2014년의 31만1877건과 비교하면 44.1%나 증가했다. 2013년에는 41만6717건, 2012년에는 12만4957건이었다. 지난해 카카오톡 채팅방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정보가 넘어간 계정 수는 29만320건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지난해 처음으로 집계됐다.
카카오는 "지난해 7월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전자정보 매체를 압수수색할 때는 영장에 적시된 혐의 관련 정보로 한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도 지난달 27일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네이버 이용자 계정에 대한 수사·정보기관의 압수수색이 22만3940건으로 2012년 이후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2013년 미국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과 영국이 세계 일반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사찰해 온 사실을 폭로한 이후,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과 네이버, 카카오 등이 잇따라 '투명성 보고서'를 내고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도 포털과 마찬가지로 수사·정보기관 요청에 따라 이용자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통신 3사 중 '투명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