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광고회사도 파나?’

삼성이 광고 계열사인 제일기획(030000)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블룸버그가 프랑스 미디어그룹 퍼블리시스의 지분 30% 인수설을 보도한데 이어, 제일기획도 2월 17일 “주요주주가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다각적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이태원로 제일기획 사옥.

연 매출 3조원의 광고회사 주인이 바뀌는 것일까? 제일기획 임직원들은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의 운명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는 삼성이 비주력 사업 정리 차원에서 지분 전량을 매각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회사와의 지분 제휴로 해외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임대기 사장 부인에도 매각설 솔솔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은 2월 17일 아침 7시쯤 서울 서초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일기획의 지분 매각설은) 계속 나왔던 이야기다.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제일기획은 이날 오전 10시50분쯤 공시에서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다각적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지분 매각 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4시간도 안돼 다른 입장이 나온 셈이다.

제일기획의 지분 매각설은 지난해 12월 삼성 오너 일가인 이서현 삼성물산(028260)패션부문 사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불거졌다. 삼성의 광고와 패션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이 사장이 패션에만 집중하면서 ‘오너가 떠난 회사에 변화가 있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삼성전자(005930)구주총괄 출신인 김석필 사장이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글로벌 사업 노하우와 폭넓은 해외 인맥을 활용하기 위한 차원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17일엔 서울 용산 이태원 별관 토지와 건물도 삼성물산에 256억원을 받고 넘기기로 했다.

디자인=김연수

◆ 43년 역사 광고업계 맏형…스포츠단 처리 등 과제도 남아

제일기획은 1973년에 설립된 명실상부한 국내 부동의 1위 광고 회사다. 지난해 실적은 매출(2조8067억원)은 2014년(2조6662억원) 대비 소폭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14년 1267억원에서 지난해 1272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삼성물산(12.64%), 삼성전자(12.6%), 삼성카드(029780)(3.04%) 등 삼성 계열사가 28.5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제일기획 지분의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퍼블리시스는 글로벌 3위 광고회사로 아시아 시장 공략 강화와 삼성전자 해외 광고 물량 수주를 위해 협상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4년과 2015년 한화와 롯데를 상대로 방산·화학 사업을 매각하는 빅딜을 추진했다. 방산·화학은 삼성의 비주력사업이었다.

광고 역시 핵심 사업은 아닌데다 과거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시달렸던 것을 감안하면 매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삼성은 2014년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비판이 일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광고를 제일기획이 아닌 TBWA에 맡기기도 했다.

국내 광고회사의 해외 매각 추진이 처음은 아니다. LG그룹은 2002년 국내 2위 광고회사였던 LG애드(현 HS애드)의 지분 35.24%를 영국계 다국적 광고회사 WPP에 매각했다. LG그룹은 이후 2008년 LG애드를 다시 인수했다.

SK는 자회사 태광멀티애드를 1998년 TBWA에, 현대는 1999년 금강기획을 영국계 코디언트그룹(CCG)에 매각한 적이 있다. 제일기획의 시가총액이 2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지분 매각 규모는 국내 광고업계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제일기획 매각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삼성은 스포츠 사업 재편에 따라 2014년과 2015년 제일기획으로 5개 스포츠단(프로야구, 프로축구, 남녀 프로농구, 남자 프로배구)을 이관했다.

하지만 해외 인수 후보가 스포츠단을 떠안을 가능성은 희박한데다 다른 삼성 계열사로 넘기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스포츠단 대부분이 적자를 내고 있어 실적 악화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방산과 화학은 매각대상이 국내 기업이었지만, 광고는 해외 기업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에 변수가 많다. 광고업계에서 제일기획이 1등 회사라는 상징성이 있기에 지분매각이 성사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