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시간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레프 톨스토이(1828~1910)

입춘 지난 뒤 햇볕이 도타워졌다. 천지간에 음의 기세가 누그러지고 양의 기운은 퍼져간다. 어제 산책길에서 만난 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로 찬 기운을 품었지만 한겨울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잔설 녹은 자리에 복수꽃이 피고, 제주도에서는 유채꽃 소식이 날아든다. 곧 남녘 동백과 매화 가지에 꽃망울이 맺혔다는 반가운 소식이 이어질 게다. 오는 봄은 새 봄이고, 내 생에서 처음 맞는 전대미문의 봄이다. 봄 기운에 피가 더워지고, 겨우내 해묵은 김장 김치에 물린 혀가 진저리를 치며 햇 것을 그리워하는 것도 이즈막이다.

오는 봄은 새봄이고 생에서 처음 맞는 전대미문의 봄이다.

며칠 있으면 뒤 어머니 기일이다. 어머니는 대장암 말기에 수술을 받은 뒤 상태가 나빠져서 의식이 혼미한 가운데 산소호흡기를 달고 연명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생의 마지막 두 달을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와 10여년을 나이 든 장남과 함께 보냈다. 장남은 과묵한 사람이고 그게 지나쳐 무뚝뚝하다 할 정도로 말수가 드문 사람이었으니, 어머니의 여생은 말벗 없이 쓸쓸했다. 그 쓸쓸함이 한기(寒氣)와 같이 뼛속까지 스며 몸서리치곤 하셨다. 나중엔 무뚝뚝한 장남 보기를 돌같이 하시며, 텃밭에 채소를 가꾸고 들깨를 심고 거두는 것을 보람으로 삼아 부지런히 수족을 놀리며 지내셨다.

옛 어른들은 남에게 제 자식을 일컬을 때 ‘견돈(犬豚)’, 혹은 ‘돈아(豚兒)’라고 했다. 제 자식을 부르면서는 개돼지, 혹은 돼지새끼라고 비하하는 호칭을 쓴 반면 남의 자식에겐 ‘영윤(令胤)’이나 ‘영애(令愛)’라는 한껏 높임말을 썼다.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음에서가 아니라 ‘명심보감’의 ‘준례편’에 나오는대로 “아버지는 자식의 덕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예를 따르고, 겸양지덕을 지킨 것이다.

내 부모도 자식 사랑을 드러내놓는 쪽은 아니었다. 철없던 젊은 시절 그게 은근히 불만이기는 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이만하면 잘 하지 않았나요. 내 부모 역시 내심 자식을 자랑스러워 했을지 모르나 입 밖으로 낸 적은 없다.

마흔 줄 들어서며 나는 부모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늙은 아들의 섭생을 염려하며 끼니 때마다 따뜻한 밥을 차리셨다. 더러는 입맛을 고려해 만두를 빚거나 국수를 끓이고, 동지에는 팥죽을 쑤었다. 나는 군말 없이 그 음식들을 꾸역꾸역 먹었으나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차라리 데면데면 한 편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막심한 불효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정많은 여동생들은 애가 끊긴 듯 몸부림치며 비통한 울음을 쏟아냈으나, 나는 끝내 울음을 보이지 않았다. 상을 치른 뒤 겨우 이런 적막한 시나 한편 지었을 뿐이다.

“어머니 상(喪) 치른 뒤/보름 지나고,//모란은 아직 일러 땅속에서 웃고 있는데,//가스불은 끄고/형광은 켜고//한밤중 널따란 부엌에/우두커니 앉은/웬 늙고 낯선 남자,//마두금(馬頭琴)이 없으니/삶을 계란을 세 개째 먹는 중이다.”(졸시, 「한밤중 부엌」)

어머니를 잃은 내 슬픔은 표현되지 않는 슬픔, 저 밑바닥에 고요히 흐르는 슬픔이었다.

어머니 없이 맞는 세 번째 봄이다.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나고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건 뒤늦게 철든 탓일까. 간고등어와 김장 김치를 올리고 햇살로 지은 밥을 얹은 늦은 저녁상을 앞에 두고 어머니와 둘이 함께 한 적막한 식사 광경이 떠오른다.

그때 어리석게도 어머니가 떠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 살과 체액 속에 어머니는 살아 있지만, 어머니는 내 곁에 없다. 오늘 그게 뼈아프게 슬프다. 내 실수는 평범한 것, 즉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시간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우리는 그 중요한 ‘지금’을 놓치면서 산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고,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항상 뒤늦게 후회한다.

◆장석주는 스무살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서른 해쯤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여름, 서울 살림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 호숫가에 ‘수졸재’라는 집을 지어 살면서, ‘일요일의 인문학’ 등 다수의 저작물을 냈다. 최근 40년 시력을 모아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 시인 박연준과 결혼 식 대신 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