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인 고령화 사회의 대처 방안으로 여성 인력의 적극적인 활용을 제시하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주요 의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여성 역량 활용도는 매우 저조한 형편이다. 몇 가지 현상만 살펴봐도 문제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는 물론 국가의 인구 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남성에 비하여 무려 36%나 낮다. 출산 육아 문제로 경력 단절 현상이 나타나는 시점이다.

구미 선진국의 경우 여성의 출산과 경력 단절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법적 장치를 잘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북구(北歐) 국가들에는 장기간의 출산 및 육아 휴직이 유급이지만 사회보장 보험에서 지불돼 기업에는 부담이 없다. 출산이 알려 지면 각종 사회 단체에서 육아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무료로 제공된다. 침대와 기저귀는 물론 옷과 장난감까지 지속적으로 제공된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만 16세가 될 때까지 국가가 아이 엄마에게 우유 및 간식비로 1인당 월 40만원 정도를 지급한다. 국내에 살고 있는 모든 어린이에게 해당되는 데, 외국인인 필자의 16세 미만 자녀 2명도 혜택을 받을 정도로 육아 여성의 경제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산에 따른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는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가 직장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았을 때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가기관으로 ‘고용기회평등위원회’가 있다. 고용과 관련해 인권, 임신, 임금, 연령 등에서 차별 받았을 경우 강제 조사 및 집행의 권한이 있다.

실제 필자는 미국에 있을 때 임신 출산 후 복귀한 여성 근로자에 대해 회사가 차별적인 인사 조치를 했다는 판정을 받고 60개월치 급여를 징벌적인 배상으로 지불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한해 8만건의 부당 조치를 조사하여 약 5000억원에 달하는 보상을 받아 낼 정도로 미국의 ‘고용기회평등위원회’의 활동은 매우 실질적이다.

둘째, 여성 고용의 기회와 고용의 질이 남성에 비해 열악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체의 절반 밖에 안되고, 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경우에도 62%로 OECD 평균인 84%에 한참 못 미친다.

국내 기업 임원 중 여성 비율도 1.9%에 불과할 정도로 ‘유리 천장’으로 불리는 여성의 승진 장벽이 높다. 법으로 여성임원할당제를 적용하고 있는 유럽의 노르웨이(36%), 스웨덴(27%), 프랑스(18%)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의 중국(8.4%), 말레이시아(6.6%). 인도(6.5%)도 우리나라보다 몇 배 높다. 우리나라 고학력 여성의 40대 이후 경제활동 참가율이 급감하는 현상도 승진 장벽에 막혀서 이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선진국들은 여성 인력의 활용 단계를 지나 여성 인재 육성과 여성 리더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사회 구조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1991년에 엘리자베스 렌이 남성 전유물이던 국방장관직을 맡았고, 스페인의 카르메 치콘은 2008년 임신 중에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2001년 이후 세계적으로 국방장관에 임명된 여성이 76명에 달힐 정도로 사회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우 1970년 이후 여성 노동력의 증가로 인한 국내 총생산(GDP) 기여도가 25%에 달한다고 밝혔다. 실적 상위 기업 중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이 없는 기업에 비하여 매출은 47%, 영업 이익은 55%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보고서는 또 203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고학력 직종에서 부족한 인력이 4000만명에 달하고, 그 대부분이 여성으로 채워 질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EU에서 2000년 이후 창출된 직업 800 만개 중 600만개가 여성에게 돌아갔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우선시 하는 미국에서도 여성의 비즈니스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여성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창조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는 목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중소기업법 8조 A 항은 여성과 유색 인종을 사회적 약자로 분류하여 정부 조달에서 이들로부터 구매해야 하는 비율을 정하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상 30%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있다. 물품과 서비스 구매 예산의 30%를 반드시 이들 여성이나 유색인종 등 약자 계급으로부터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이다.

구미 선진국이 이 같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여성 리더십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역량 확대와 국가 전체의 경쟁력 강화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출산 및 육아와 경제활동 참가 중 선택을 강요 받는 차별적인 제도의 개선과 여성 역량의 강화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여성 인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제거와 제도 개선을 통해 선진국으로서의 품격과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