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저 금리라는 악재 속에 4, 5일 일제히 발표된 주요 은행들의 지난해 실적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대출 등 은행 본연의 업무에 속하는 이자 관련 수익은 줄어든 반면 펀드 판매 등에서 거둔 수수료 수익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그런데 대부분 은행이 순이익을 냈다고 발표한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엔 은행장들이 모여 은행원 초임을 깎고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꾸는 등 은행권 임금체계를 손보겠다고 합의했다. 여전히 연간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는 은행 대표들이 임금 체계 '대수술'을 결의한 데는 대내외 환경을 감안할 때 은행의 선방이 계속 이어지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연내 인터넷 은행 출범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고 기업 구조 조정 본격화로 부실채권이 급증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은행들 '수수료' 덕에 선방

대부분 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보다 약간 늘었다. 업계 1위인 신한은행은 전년(1조4552억원)보다 순이익이 2.4% 늘어 1조4897억원을 기록했고, 국민은행의 순이익도 7.6% 늘어 1조1072억원이었다. 우리은행과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지난해 각각 순이익이 143%, 11.5% 증가했다.

은행들의 순이익이 늘어난 것은 수수료 등 비(非)이자 부문 수익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예금·대출 금리 차이에 따른 수익률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을 보면, 주요 은행들의 NIM은 지난해 전년보다 0.2~0.3%포인트가량 떨어진 1.4~1.6%대를 기록했다. NIM이 감소하면 같은 돈을 굴리더라도 수익은 줄어든다. 실제로 신한·국민·KEB 하나은행은 지난해 이자 수익이 각각 4~5% 정도 감소했다.

반면 펀드·보험 등을 판매해 거둔 수수료 수익 등을 포함한 비이자 이익은 모든 은행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은행들의 비이자 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펀드, ELS(파생결합증권) 등의 판매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펀드 판매 금액이 6조7370억원으로 전년(3조964억원)의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 펀드 부문 수수료 이익이 8.7% 증가(1396억→1518억원)했다. 신한·우리은행도 펀드 수수료 이익이 각각 4.5%(1059억→1107억원), 8.2%(610억→660억원) 늘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전략적으로 펀드 판매 등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예금과 대출 금리 차가 줄어든 상황에서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기업 구조 조정으로 올해는 '수익 절벽'

하지만 은행들이 올해도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중국 시장 불안과 경기 침체 등으로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기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NH투자증권 최진석 연구원은 "중국·유럽·일본 등의 양적 완화 재개와 더불어 한은이 금리를 또 내린다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만약 기준금리가 추가 인하되면 은행의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올해부터 기업 구조 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부실채권 증가로 인한 손실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절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인건비 절감, 지점 감축 등 비용 절감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고액 연봉으로 이름난 한국 은행들은 판매관리비(영업 활동 전반에 들어가는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2%에 달해 미국 등 선진국 은행(약 45%)보다 훨씬 높다. 대부분 직장에서 사라진 호봉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저(低)성과자에 대해 관대한 문화 등도 은행권의 문제로 지적되지만 인건비 감축의 경우 노조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돼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