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중화인민공화국. 모든 지적인 행동은 자본주의 사상이며 모든 지식인은 반혁명주의자라던 “문화대혁명”. 주인공의 아버지는 여전히 과학과 기술만이 중국의 미래라고 믿는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나약한 한 사람의 이성이 어떻게 사회의 야만과 광기에 맞설 수 있을까? 자본주의자를 학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정신이라고 믿는 여학생들의 채찍질 아래 아버지는 숨진다. 그것도 남편을 배신한 어머니의 욕설을 들으며 말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제자가 선생님을 배신하던 광기의 시대. 어린 주인공은 너무 많은 것을 봤기에,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인류는 어차피 희망이 없다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배신하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라고.

육체적 노동만이 자본주의에 물든 반혁명적 마인드를 씻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문화대혁명. 주인공 역시 수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깊은 산속으로 추방된다. 하지만 불행이었을까, 아니면 행운이었을까? 아버지를 닮아 역시 천재적 물리학자였던 주인공은 극비밀 군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바로 외계인들과의 소통이었다. 자본주의 미국과 수정주의 소련 모두 외계인들과 연락을 시도하니,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뒤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거대한 천체안테나를 통해 우주의 소리를 듣고 있던 주인공. 일주일, 일년, 십년.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답이 왔다. 인류 역사상 지구인과 외계인의 첫 연락이었다. 하지만 외계인의 메시지는 뜻밖이었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우주는 정글이라고. 숨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3개의 태양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혹성에 살고 있는 자신들은 지구같이 안전한 혹성을 찾고 있었다고. 지구의 존재가 알려지는 순간 자신들은 지구를 정복하고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그러니 다시는 절대 우주로 신호를 보내지 말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서슴지 않고 새로운 메시지를 보낸다. 지구의 역사와 기술과 정치를 설명해 준다. 인간을 포기한 주인공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배신한 것이다.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된 외계인.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기술로 무장한 그들의 우주선 1000척이 지구를 향하고 있다. 광속 1/10로 이동하는 외계인 함대는 400년 후면 지구에 도착하게 되고, 그들의 도착은 인류의 멸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앞으로 400년동안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중국 최고의 SF작가 류츠신의 “삼체” 내용이다. 3부작으로 구성된 책은 중국 최고의 SF라는 호평을 받았고, 2015년 “SF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Hugo Award)을 받기도 했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그의 블로그에서 “삼체”를 2015년 최고의 책 중 하나로 뽑기도 했으니 말이다. 중국 SF라는 것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 역시 빠져든 책. 역사, 천문학, 물리학, 뇌과학, 정치학, 사회학, 철학. 이 모든 문제를 다루는 류츠신의 방대한 지식에 놀라며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400년후의 미래를 걱정하는 방대한 스케일의 인류를 그리는 중국 작가 앞에 언제나 바로 코앞에 보이는 문제나 걱정하며 사는 대한민국이 부끄러워 지기까지 했다.

류츠신 (劉慈欣) 지음
"삼체", 2015 단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