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분양 전환 추가 금액 요구…계약 때와 말 달라"
시행사 "추가 부담금 안 받겠다고 한 적 없다" 반박

"우리가 가격을 깎아달라고 생떼를 쓰는 게 아니에요. 이건 거대 시행사의 '갑질'이에요."

2013년 8월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 힐스테이트 아파트를 스마트 리빙제로 계약한 박모 씨는 계약 기간이 끝나 집을 사려고 하니 건설사가 말을 바꾸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계약 당시 분양대행사가 '전세로 살다가 집을 사려면 1억7200만원을 더 내야 하지만, 이는 원 분양자들의 민원을 줄이기 위해 형식적으로 만든 것이고 실제 더 내는 돈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그런데 막상 만기일이 다가오니 건설사가 1억1400만원을 더 내라고 한다"고 했다.

2013년 7월 같은 단지에 스마트 리빙제로 입주한 김모 씨 역시 "2년 전 인근에 있는 성복동 수지자이 2차, 신봉센트레빌 5∙6단지가 30% 할인분양을 했었다"며 "유예금이 있는 줄 알았으면 힐스테이트로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스마트 리빙제로 시행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성복 힐스테이트 아파트 입주민 100여명이 한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주최한 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카페에 모였다.

2013년 유행처럼 번진 스마트 리빙제, '애프터 리빙제', '프리 리빙제', '리스크 프리제' 등 환매조건부 매매제(전세형 분양제)의 만기 시점이 돌아오면서 입주자와 건설자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스마트 리빙제는 환매조건부 매매계약으로 계약기간 동안 우선 살아본 다음 집을 살지, 환매신청을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갈지 결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건설사와 입주민이 맺은 계약이 구체적이지 않고, 일부 조항은 입주민에게 불리하게 돼 있어 입주자와 건설회사 간 갈등이 빈발하고 있다. 성복 힐스테이트에 스마트 리빙제로 입주한 약 700명 중 260여명은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집단 대응하고 있다.

송도 글로벌캠퍼스 푸르지오 단지에도 '프리 리빙제 계약자 협의회'가 만들어져 480여명의 회원이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다. 애프터 리빙제를 둘러싸고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반도유보라팰리스 입주민들과 시공사인 반도건설과의 다툼은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 "분양대행사는 유예금 없다고 했는데…" 시행사는 "모르는 일"

스마트 리빙제 약정서에는 "잔금 유예금을 안 받겠다"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분양 대행사가 잔금 유예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복 힐스테이트 스마트 리빙제 입주민들은 "분양 대행사가 분양받을 때는 잔금 유예금을 안 내도 된다고 했다"고 주장하지만, 시행사인 일레븐건설은 입주민들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일레븐건설 관계자는 "잔금 유예금을 안 받으면 10년 전에 분양한 아파트 매매가와 똑같다"며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또 "분양대행사의 상담사가 당시에 어떻게 얘기를 했는지 보고받은 바 없다"며 "계약서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송도 글로벌캠퍼스 푸르지오의 갈등도 비슷하다. 프리 리빙제로 입주한 이모 씨는 "분양대행사에서 잔금 유예금을 나중에 전부 할인한다고 해서 계약했는데 시행사인 대우건설(047040)은 모른다고 잡아뗐다"며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행사가) 자기 현장을 모른다면 관리소홀인데, (분양사의 상담내용을)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시행사가 법적인 문제 탓에 모르는 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시행사는 모르겠다고 하고, 시공사는 사업 주체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분양대행사는 팔아넘기기만 하면 끝인 사업구조"라고 꼬집었다.

◆ 뻥 뚫린 계약서…"빛바랜 벽지까지 원상복구 요구"

스마트 리빙제 약정서의 원상복구 규정은 '의무가 있음을 확인한다'고만 적혀있어 분쟁의 소지가 있다.

건설사와 입주민들이 다투는 다른 이유는 계약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뻥 뚫린 계약서'다.

반도유보라팰리스 입주민과 반도건설 사이의 소송은 '시세'가 쟁점이었다. 계약서는 입주자가 내야 할 잔금 유예금을 '시세에 따라 협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설사는 "실거래가가 곧 시세"라고 주장했다. 입주민들은 "애초에 미분양인 아파트인데, 실거래도 한 달에 1~2건 정도밖에 없어 실거래가를 시세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당시 입주민을 변호한 박병규 변호사에 따르면 재판부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조정만 권고했다. 박 변호사는 "실거래가 몇 건 없는 아파트 단지는 건설사가 비싼 가격의 매물을 한두 개 거짓으로 만들어 얼마든지 시세를 올릴 수 있다"며 "실거래가를 평균 시세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원상복구 규정도 쟁점이다. 성복 힐스테이트의 '스마트 리빙제 약정서' 제7조는 '을은 부동산 명도 시 원상복구 의무가 있음을 확인한다'고 적혀있다. 일반적인 임대차 계약의 원상복구 규정은 판례가 많지만, 스마트 리빙제와 같은 환매조건부 매매계약은 임대차 계약이 아니다 보니 판례가 거의 없다.

성복 힐스테이트 입주민 한모 씨는 "(시행사가) 햇빛에 바랜 벽지까지 원상복구 하라고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심교언 교수는 "환매조건부 매매계약에서의 원상복구 규정을 법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임대가 아니라서 처음에 들어왔던 것처럼 만들고 나가라는 것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고 말했다.

◆ 환매 요청 입주민, 집 먼저 비우고 보증금은 나중에 받을 수도

스마트 리빙제 보장증서는 보증금 환불 시기를 '신청기간 종료 다음 달부터 10개월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몇몇 계약조건은 입주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었다. 성복 힐스테이트 약정서에 따르면 명도 통보를 받은 입주민은 60일 안에 집을 비워야 하지만, 보증금은 10개월 안에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시행사는 입주민이 집을 비워도 보증금을 최대 8개월 뒤에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일레븐건설 관계자는 "입주민이 집을 비우는 날 보증금을 돌려줄 예정"이라고 했지만, 입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스마트 리빙제 입주민 박모 씨는 "건설사 측에 문서를 만들어 확실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2주일째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환매 신청을 하고 힐스테이트를 떠나려는 대다수 주민은 시행사가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박병규 변호사는 "대부분의 스마트리빙 계약서에 입주자를 보호하는 권리조항이 없다"면서 "건설사의 횡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교수는 "(계약이) 개인과 기업의 관계지만 스마트 리빙제는 전혀 새로운 입주 계약 모델이고 이미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표준계약서 만들고 표준계약서와 다른 내용은 사전에 입주자에게 반드시 알리는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