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선수를 연기하는 영화 '국가대표2' 촬영을 최근에 끝냈어요. 요즘은 연극 무대에 서고 있고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가 곧 개봉해요. 차기작으로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돼 있어서 촬영 준비도 하고 있어요."
배우 박소담(25)은 감기에 걸렸는지 연방 코를 훌쩍였다. 목도 아파 한동안 말을 쉬어 가기도 했다. 키 165㎝에 몸무게 50㎏이 안 되는 가녀린 체구가 견뎌낼 일정이 아니지 싶었다.
연극 '렛미인'이 공연 중인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박소담을 만났다. 배우로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2년을 막 채웠는데, 다작(多作)에도 출연작 대부분이 흥행했다. 영화 '검은 사제들' '사도' '베테랑'…. 그녀는 20대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충무로가 발견한 기대주다.
박소담을 모르는 관객도 '검은 사제들에서 악령 들린 여중생'이라고 일러주면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출연 중인 연극 '렛미인'에서는 고독한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를 맡고 있다. '귀신 전문 배우'라 해도 좋을 법한데 막상 자신은 "무서운 건 질색"이라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영화 '장화, 홍련'을 보다 기겁한 뒤로는 한 번도 공포물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구마(驅魔) 의식을 다룬 영화를 일부러 피했어요. 제 상상력을 가두게 될까 봐서요. 만약 봤으면 두려워서 연기를 못 했을지도 몰라요.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구마나 악령이 어떤 개념인지 공부했죠."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 여고생이었던 박소담의 마음을 연기로 이끈 건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단체 관람한 뮤지컬 '그리스'였다. 잠깐 즐거운 거겠지, 생각했는데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내 길이겠다, 싶어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반대가 심했다.
"'뮤지컬 잘 보고 와서 무슨 헛소리야. 공부나 해'라고 하셨죠. 제가 큰딸이거든요. 동생들이 보고 있으니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1년 반을 졸랐다. 먼저 마음을 연 건 엄마였다. 연기학원을 갈 수 있게 됐다. 박소담은 "아빠가 '무슨 학원비가 이렇게 비싸냐' 물으시면 엄마는 '소담이가 종합반을 다니는데 돈이 좀 들더라'고 거짓말까지 하시면서 나를 응원해주셨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한 박소담은 2014년 2월 졸업 전까지 상업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휴학하고 연예기획사에 들어가 활동하라"고 조언한 선후배들도 있었지만 교내 연극과 독립영화에 얼굴을 비쳤을 뿐이었다. "두려웠어요. 학교 밖에서 성공 못 하면 다시 돌아와도 순수한 마음으로 연기를 공부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졸업 후 한 달은 후회와 낙담의 연속이었다. "오디션을 열아홉 번이나 봤는데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없더라고요. '난 할 줄 아는 게 없구나'라며 자책도 했어요." 그렇지만 다소 늦은 출발은 오히려 연기 활동에 득이 됐다. 대학 시절 영상원 동료와 촬영했던 독립영화 '수지'가 미장센영화제에 출품되면서 그를 눈여겨본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에 캐스팅했다.
충무로에서 고속 질주 중인 박소담이 연극 무대로 발길을 돌린 까닭은 평생 배우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첫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저는 연극으로 연기를 배웠어요. 아침마다 다 같이 모여 몸 풀고 연습하고, 공연 전 서로 안아주면서 '잘하자'며 으쌰으쌰 하면 기운이 나죠. 공연장에서 관객과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순발력도 기를 수 있고요. 무대는 여전히 저에게 도전이자 열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