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21일 중국인 남녀 밀입국자 2명이 인천국제공항 출입문을 뜯고 국내로 잠입한 사실이 26일 뒤늦게 밝혀졌다. 중국인 밀입국자들은 불과 14분 만에 인천공항 보안 시스템을 다 뚫고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출입문을 따고 있는 곳에서 10미터 옆에 있던 보안 요원은 밀입국 현장을 지켜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 곳곳에서 무차별 테러가 발생하는 가운데 한국도 얼마든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인천공항은 연간 이용객이 4900만 명(2015년)이 넘는 세계적인 허브 공항이다. 올해 1월 3일 하루에 이용객이 17만명이나 됐다. 인천공항은 10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으로 선정(국제공항협의회·ACI)됐다고 자랑한다. 우리의 관문, 인천공항의 안전 지수, 테러 대비 점수는 어떤 수준일까?

지난 21일 밀입국 사건은 보안 요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예견된 사고였을까?

조선비즈는 올해 초부터 인천공항의 테러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 인천공항의 보안과 경계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1월 13일, 14일, 15일, 18일, 20일 다섯 차례 인천공항에 가서 ‘폭탄 테러’를 가정한 모의 실험을 진행했다.

물론 폭탄을 실제 만든 것은 아니다. 기자가 ‘가상의 테러리스트’가 되어 이용객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 가방을 놓아두거나 CCTV 사진을 찍는 등 ‘테러리스트로 의심 받기 충분할 정도의 수상한 행동’을 했다. 미국이나 유럽 공항이라면 당장 보안 요원들이 출동해 조치를 취했을 수준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다. 보안 요원 숫자나 장비는 세계적인 수준일지 몰라도 ‘테러 방지’는 낙제점임을 확인했다.

14일 인천공항 지하주차장에 놓인 가짜 폭발물 뒤로 유모차를 끌고 지나는 여성과 아이들이 보인다.(맨위 왼쪽) 여객터미널 입구에 주인없이 가지런히 놓인 서류가방이 마치 테러리스트가 놓고 간 폭발물을 연상케 하고 있다.(아래 오른쪽) 여객터미널 입구 기둥 앞에 놓인 수상한 가방 옆으로 여행객들이 의심 없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아래 왼쪽)

◆ 세 차례에 걸친 모의 테러…”한국서 그런 일 일어나겠나?”

가장 먼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테러리스트가 가장 은밀하게 폭발물을 숨겨 놓을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했다. 지하 주차장 전 층은 밝고 깨끗하고 넓었다. 하지만 경비 요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실험1. 서류 가방으로 위장한 폭탄을 일부러 카트 위와 기둥 바로 앞에 놓고 30여분을 지켜봤다. 여행객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순찰하는 보안 요원도 없었다. 지하 3층부터 지하 1층까지 돌아다니며 미심쩍은 행동을 해도 눈길 주는 사람은 없었다. CCTV 카메라는 반응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옆 비상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공항 지하 주차장에는 왜 경비가 없나요?” 공항 보안 담당자들에게 물어봤다. "지하 주차장은 원래 내부 순찰을 하지 않고, 야외 외곽 지역만 확인한다. 공항 곳곳에 CCTV가 많아 보안에 큰 문제 없다." 공항 관계자의 대답에서 ‘보안 불감증’이 연상됐다. “만약 테러리스트들이 이곳에 폭탄이라도 설치했다면 어떠했을까?” 등골이 오싹했다.

실험2. 여객 터미널로 향하는 통로에 가상 폭발물을 놓고 20여 분을 기다렸다. 많은 여행객이 지나갔다. 하지만 신고하는 사람도 수상한 가방을 치우는 보안 요원도 없었다. 여객 터미널로 바로 이어지는 입구 쪽 기둥 정중앙에 '수상한 가방'을 놓아 두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지난 13일 조선비즈 보도 직후, '보수 공사 중'이라는 A4 용지는 사라진 상태였다. 여행객들은 주인 없는 가방을 보고도 그냥 스쳐 지나갔다.

지나가는 여행객을 잡고 물어봤다. 김모(32)씨는 "가지런히 놓인 가방이 눈에 띄어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외국처럼 폭탄 테러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선 그럴 일(테러)이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공항 내 주요 CCTV 카메라를 렌즈 정면 방향으로 촬영한 모습들. 10대를 촬영했으나, 보안요원은 아무도 출동하지 않았다.

실험3. 마지막으로 공항 내에서 가장 수상한 짓을 해봤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대놓고 CCTV 카메라를 찍었다. 보안 통제 구역 근처를 포함해 모두 10곳이었다. 이번엔 누군가 이런 수상한 행동을 신고해 주기를, 보안 요원이 현장에 출동하기를 간절히 기대했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인천공항은 "대테러 상황실 소속 직원 50여 명이 보안용 CCTV 모니터를 24시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모든 상황을 감시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공항 경비를 위해 설치한 모니터를 향해 대놓고 열 차례나 수상한 행동을 했는데도 아무 조치는 없었다. 만약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어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할까?

인천공항이 최근 실시한 대테러훈련의 한 장면. 폭발물처리반이 조심스럽게 폭탄으로 의심되는 물체에 접근하고 있다.

◆ 기동타격대 등 경비 인력1144명, 검색요원도 1091명...감시 모니터 2000대 넘어

인천국제공항 보안경비 책임은 일차적으로 인천공항공사에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정원, 검찰, 경찰, 군 등은 비상 사태 발생시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도 공항에 상주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국제전화로 걸려 온 공항폭파 협박 전화에 인천공항경찰대가 폭발물 탐지견을 동원해 즉각 순찰을 강화한 것이 전형적인 협조 사례다.

종종 공항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낀 채 2인 1조로 순찰을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인천공항 보안처 특수경비대 소속 기동타격대 요원들이다. 96명으로 조직된 기동타격대는 A, B, C조로 나눠 근무를 서고, 1일 32명이 24시간 3교대 근무한다. 외곽 경비를 맡은 별도 인원을 포함하면 모두 1144명이다. 보안검색대 요원도 1091명에 달한다.

대테러상황실에서도 2000여 대의 보안용 CCTV 모니터를 감시하고 있다. 주로 통합경비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한다. “통제구역에 누군가 무단으로 침입할 때 경보가 발생하고 그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쓰인다”고 했다.

공항에서 실제로 테러가 발생할 경우, 국무총리 직속으로 테러대책회의가 소집되고 국토교통부 2차관을 본부장으로 항공테러 사건대책본부가 설치된다. 이후 각 관계기관들이 서로 정보를 제공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며 협조하는 개념이다.

인천공항은 관계기관과 함께 2년에 한 번 대테러종합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터진 프랑스 파리 테러사건 이후 현재 항공보안등급은 '관심'에서 '주의'단계로 상향됐으며,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각급 정부기관과 공조를 이루고 있다.

◆폭발물 의심 신고하려면 지역 번호부터 눌러야...“이런게 탁상행정”

모의 테러 실험을 해보니 인천공항은 테러에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아무도 신고한 사람이 없었고, 보안 요원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 유럽 등이 공항 등 주요 시설에 대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2014년 6월 파키스탄 카라치 진나국제공항에서 테러가 발생, 20명이 사망했다. 승객들이 오가는 공항은 1급 테러 보안 시설이다.

하지만 공항을 오가는 한국 여행객 대부분은 한국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나리라 생각지 않았다. 인천공항도 "지금껏 별문제 없었으니 앞으로도 그렇지 않겠냐. 문제라 해봐야 폭파 협박 전화인데 그것도 2013년 이후로 매년 4건씩 장난 전화에 불과하다"는 자세였다.

공항 측이 1~2시간 간격으로 여행객들에게 안내 방송하는 ‘테러 발생 시 대응 요령’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에 따르면,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건이나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공항 대테러상황실(032-741-4949) 또는 공항경찰대(032-740-0112)로 신고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박모(39)씨는 “인천 지역번호까지 누르며 처음 듣는 번호로 신고하라고 안내 방송을 하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112 등 실제 상황을 대비한 번호 안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911, 영국은 999로 통합 단일번호를 공지하고 있다.

영국 국가대테러안전사무국(NaCTSO)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테러대응 메뉴얼 이미지. 'RUN(달려라), HIDE(숨어라), TELL(알려라)' 3가지 원칙으로 구성해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안내하고 있다.

◆ “RUN(달려라) HIDE(숨어라) TELL(알려라)” 영국의 테러 대응 매뉴얼

영국 국가대테러안전사무국(National Counter Terrorism Security Office. NaCTSO)은 지난해 12월 18일 테러대응 메뉴얼을 발표했다.

메뉴얼은 'RUN(달려라), HIDE(숨어라), TELL(알려라)' 3가지 원칙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 시민들이 테러 발생 시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테러 공격이 발생할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전제한 뒤, 가장 먼저 안전한 길로 달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위험한 곳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하거나 진동 알림을 즉시 끄고 숨어야 한다고 안내했다. 마지막 단계에선 경찰에게 신속하게 알릴 것을 당부했다.

우리 외교부도 지난 18일 '국외 테러 피해 예방 및 대응 요령'을 공개했다. 폭탄, 총기, 억류납치, 화학・생물・방사능 등 각 위험 상황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안내하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에서 방송하는 테러 대응 내용과 비슷하다.

[인천공항 르포] 2015.1.14. "꺼진 등, 방치된 짐들, 주저 앉은 학생들...낯뜨거운 우리의 관문"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4/20160114005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