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준 회장

"쌍용건설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위기를 모두 이겨내고 다시 우리와 함께 일하게 돼 다행입니다. 공사 수주를 축하드립니다."

이달 25일 낮 싱가포르 도심에 자리잡은 육상교통청(LTA·Land Transport Authority) 사무실에서 LTA 발주 담당자와 안국진 쌍용건설 해외건설 영업 총괄(전무) 등이 만났다. 이 자리는 쌍용건설이 싱가포르 LTA가 발주한 도심지하철 공사를 수주한 이후 발주처와 시공사 간의 첫 공식 회동이었다. LTA 발주 담당자인 추와청킹씨는 "사실 쌍용건설이 입찰한 가격은 최저가가 아니고 3위였지만 쌍용의 기술력과 과거 싱가포르에서 쌓은 시공 실적, 모기업인 두바이투자청의 신뢰도를 높게 평가해 시공사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쌍용건설(회장 김석준)이 이번에 수주한 도심지하철 공사는 2억5200만달러(약 3050억원) 규모로 쌍용건설과 현대건설이 각각 75%와 25%의 지분으로 공동 수주했다. 이 공사는 싱가포르 남북을 가로지르는 도심지하철 '톰슨 라인' 남쪽의 동부 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것으로 아파트 밀집 지역을 지나고 연약 지반 위에 건설해야 하는 고난도 구간이 포함돼 있다. 총 1.78㎞ 구간에 1.34㎞ 길이의 터널 2개와 역사(驛舍)를 짓는다. 공사 기간은 85개월이다. 쌍용건설은 지난달 두바이에서 호텔 등 3개 프로젝트(총 16억달러)를 수주한 데 이어 1개월 만에 다시 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해외 건설 시장에서 쌍용이 본격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中東에서 차별화된 경쟁력

쌍용건설은 고급 건축과 고난도(高難度) 토목공사 등에서 특히 강하다. 하지만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자금난 등의 영향으로 2013년 12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지난해 1월 두바이투자청(ICD)이 쌍용건설을 인수하면서 1년 3개월 만에 위기에서 탈출하며 정상화됐다. 법정관리 대상 기업은 입찰 자격도 없다. 이에 따라 쌍용건설은 2014년 6월 말레이시아 랑카위의 호텔·컨벤션 공사(810만달러) 수주를 마지막으로 1년 6개월여 동안 수주를 한 건도 못했다.

쌍용건설이 최근 수주한 싱가포르 도심 지하철 공사에 포함된 역사(驛舍) 진입로(위)와 작년 12월 수주한 두바이 로열 애틀랜티스호텔(아래)의 조감도.

쌍용건설이 두바이투자청에 인수된 후 처음 수주한 공사는 두바이 로열 애틀랜티스 호텔(공사 규모 8억4000만달러), 팜 게이트웨이(3억8600만달러), ICD가 추진하는 호텔 공사인 A 프로젝트(3억7000만달러) 등 총 16억달러 규모다. 김종국해외건설협회 중동실장은 "최근 2~3년 사이 두바이 경제가 회생하면서 대규모 토목·건축 공사가 발주되고 있다"며 "쌍용건설은 두바이투자청이라는 확실한 모기업이 있어 두바이는 물론 다른 중동 국가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입찰가 높았지만 높은 기술력 인정받아"

쌍용건설이 이번에 수주한 싱가포르 도심지하철 공사는 공사 금액으로만 보면 3000억원대로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공사 수주는 쌍용건설 입장에서는 기업 정상화 후 기존 '텃밭'에서 처음 공사를 수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80년 싱가포르에 처음 진출한 쌍용건설은 호텔·도로·지하철 등 39건의 공사를 수주해 독보적인 실적을 쌓았다. 2010년 6월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샌즈호텔'을 지었고 1986년 세계 최고층 호텔로 기네스북에 오른 73층짜리 래플즈 시티도 쌍용의 작품이다. 싱가포르의 국보급 호텔 래플즈호텔 복원공사와 고(故) 리콴유 총리의 집무실이 있는 캐피털타워,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와 싱가포르 도심지하철 등도 쌍용건설이 참여했다.

쌍용건설이 이번에 수주한 도시철도 공사는 입찰 가격은 물론 시공사의 시공 능력, 기술력, 안전관리 능력, 경영평가 등도 종합 평가하는 입찰평가방식(PQM)으로 진행됐다. 이건목 쌍용건설 해외건설 담당 상무는 "입찰 가격은 다른 업체보다 점수가 낮았어도 기술력과 안전성 등 비(非)가격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공사를 수주해 의미가 크다"며 "다른 나라에서 발주되는 공사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적극 수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