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가 34일(거래일) 연속으로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팔아치웠다. 연속 순매도 기간만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긴 역대 최장 기록이다. 외국인 순매도의 원인인 저유가 상황이 계속되는 한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증시 이탈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증시가 부진했던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딜러가 고민에 잠겨 있다.

◆ 얼마나 팔았나

2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2969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2일 이후 34일째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6일에는 외국인이 1630억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오지만, 한국항공우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인해 착시가 생긴 것이다. 지난달 2일 이후 외국인 순매도 규모만 6조원을 넘어섰다.

이전 외국인 역대 최장 연속 순매도 기간은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가 몰아치던 2008년이었다. 당시 2008년 6월 9일부터 7월 23일까지 33일 동안 외국인이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순매도 금액은 8조9834억원이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18일 기준으로 28.63%에 그쳤다. 2009년 8월 17일(28.5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가 한국 증시가 다른 신흥국 증시에 비해 탄탄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상황이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올해(20일 기준) 들어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증시에서 20억1180만달러를 순매도했다. 대만(23억6020만달러)과 비슷한 수준이고, 태국(3억160만달러), 인도(11억1580만달러), 남아공(5억7150만달러)보다는 오히려 많다.

◆ 무엇을 팔았나

이 기간에 외국인이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은 삼성전자(005930)다. 지난달 2일 이후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1조8290억원 어치 순매도했다. 뒤를 이어 삼성전자 우선주(6064억원), 포스코(3952억원), 호텔신라(3004억원), 현대차(2847억원) 순매도 금액이 많았다. 외국인이 주로 사들이는 대형주 위주로 순매도 규모가 컸다.

지난달 2일 이후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의 주가 등락률 추이.

외국인이 많이 판 종목들은 여지없이 주가도 좋지 않았다. 이 기간 삼성전자(005930)와 삼성전자우선주 주가가 각각 14.3%, 15.8% 하락했다. 포스코(-11.1%), 호텔신라(-30.4%), 현대차(-10.4%)도 부진했다.

반면 외국인이 많이 산 종목 중에는 하락장에도 선방한 경우가 많다. 이 기간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 5개 가운데 셀트리온(33.1%), 한국전력(1.5%), BGF리테일(21.8%)은 주가가 올랐다.

중동계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어떤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2007년 이후 외국계 자금의 한국 증시 매매패턴을 분석해 중동계 자금이 많이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종목을 추렸다. 주로 은행, 자동차, IT, 조선주가 많이 포함돼 있다.

지난달 2일 이후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의 주가 등락률 추이.

◆ 누가 팔았나

증시전문가들은 이번 외국인 순매도 행렬의 주인공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목했다. 저유가 상황이 계속되면서 오일머니에 의존하는 중동 국가들이 주식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6월부터 한국 증시에서 순매도로 돌아섰다. 작년 연말로 갈수록 순매도 규모가 커졌다. 사우디아라비아계 자금은 지난해 6월 이후에만 4조5000억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전체 순매도 금액의 30%에 이르는 큰 규모다. 중국계와 호주계 자금도 한국 증시에서 많이 빠져나갔다.

국제유가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오일머니의 추가 이탈도 가능하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금 중 미국계 자금은 순매수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우디계 자금이 순매도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며 "장기간 저유가 기조가 예상되는 만큼 외국인 순매도세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