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는 지난해 [3040 파워 이코노미스트]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있는 30대, 40대 젊은 경제학자들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사회 이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2016년에는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30대, 40대 한국인 경제학자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미경제학회(KAEA) 전현직 임원진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성형수술은 내 삶에 정말 도움이 될까? 남학교나 여학교가 남녀공학보다 좋을까? 데이트에서 고백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뭘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경제학자가 있다. 이수형 미국 메릴랜드대학 교수(41)다. 이력이 독특하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42회)를 치러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공무원이 됐다. 서울대 경제학부를 1등으로 졸업하고 행시 재경직 차석으로 공직에 입문한 알파걸이다.

사진=장련성 객원기자

방학을 맞아 한국을 들른 이 교수는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공식 프로필 사진보다 훨씬 앳돼 보였다. 사진 촬영을 어색해하면서도 본인의 연구 성과를 묻자 논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94학번인 이 교수는 재경부 국제금융국에서 4년째 일하다 유학길에 올랐다.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응용계량경제학’ 전문가다. 수많은 자료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낸다. 가령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을 모아서 이들의 임금이 실제로 올랐는지, 만족하는지를 알아본다.

연구의 최종 목표는 탐색비용을 줄여서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고객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으려고 발품을 팔거나 주변에 묻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을 탐색비용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가 늘면서 가게 하나하나를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가 덜해 탐색비용이 줄었다고 볼 수 있다.

탐색비용은 물건을 살 때만 적용되지 않는다. 이 교수는 구인 구직, 대학 입시, 남녀 만남 등 생활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요와 공급 불일치에 따른 탐색비용과 비효율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한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의 제자다.

다음은 이 교수와 일문일답.

-왜 재경부를 떠났나. 재경부 재직 당시 일을 잘했다고들 하던데.

“재경부에서 마지막 보직이 G20(주요 20개국 회의), WTO(세계무역기구) 도하라운드 등 국제 협상을 다루는 일이었다. 실무자니까 연구 보고서에 코멘트를 써야 했다. 경제학부만 졸업한 것으로는 예리하게 코멘트를 할 수 없었다. 재경부가 유학을 보내주긴 하지만 10년 넘게 근무한 후에야 가능해서 마냥 순서를 기다릴 수 없었다. 자비 유학을 결심했다가 다행히 관정장학재단과 스탠포드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돼 재정적인 부담이 줄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수도 있지 않았나.

“유학을 위해 자의 휴직을 했는데 공무원법상 휴직할 수 있는 기간이 5년이다. 박사학위를 따는 데 6년이 걸렸다. 5년 고생한 게 아까워서 학위를 안 받고 갈 수 없었다.”

-고민은 없었나.

“많았다. 한국에 계신 은사님들은 돌아와서 (재경부에서 일을 다시)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재경부로 돌아가느냐, 학교에 남느냐 선택할 때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학위를 받는다고 직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까. 암울했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나.

“결과적으로는 잘 선택한 것 같다. 2008년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논문 중 최우수 논문에 주는 랜도상(Landau Working Paper)을 받고 거시경제와 응용계량이 유명한 메릴랜드학에서 교직을 잡았다. 메릴랜드대학에 있으면서 박사과정 때보다 경제학자로서 더 훈련받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응용경제계량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재경부 재직 때) G20 등 국제금융협력 업무를 했다. 유학 초기에는 국제금융 전문가가 되려고 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1~2학년을 지내며 응용계량경제학을 접했다. 재밌었다. 응용경제계량학은 자료에서 패턴을 밝히는 학문인데 응용 분야가 넓다. 예를 들어 정부 정책의 효과를 분석할 때 미시 데이타(micro-level data)를 써서 어떤 정책을 쓰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인과관계(causal effect)를 분석하고 이를 수치화한다.”

-성형수술, 대학입시, 남녀 만남 등 논문 주제가 다양하다. 공통점은?

“시장과 개인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거나 대학입시나 구인 구직에서 미스매치를 줄이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가령 성형수술을 생각해보자.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외모 차별이 있다. 이런 차별은 인재를 효율적으로 쓰는 데 방해가 된다. 하지만 사람의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론적으로는 비효율적 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성형수술을 할 수 있다. 내 연구는 실제로 성형수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밝힌 것이다.”

-성형수술이 정말 효과가 있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일단 성형수술이 잘된 사람과 못된 사람 간 격차가 엄청나다. 평균적인 효과가 나타난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시작점이 안 좋은 사람(못생긴 사람)은 효과가 확 나타난다.

문제는 경제적 효과가 있으려면 김태희 정도 돼야 프리미엄이 있다는 것. 결과적으로 성형수술은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극복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면접에서 외모가 중요하다는 기사를 봤는데 실증분석이 없다. 면접에서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합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성형수술로 개인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성형수술로 외모가 나아지면 자신감이 높아질 수도 있다. 성형수술은 인적자본 투자라기보다 개인 만족도를 높이는 소비인 셈이다.”

-요즘 연구하는 주제는?

“대학 입시에서 탐색비용이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칠레 정부로부터 10년 동안의 학생 점수와 지원 학교, 최종 입학 결과를 받았다. 분석 결과 학생의 시험 성적이 같더라도 출신과 부모 소득에 따라서 최종적으로 입학하는 학교와 학과의 순위에 차이가 났다. 그러나 대학 입시 제도가 단순해지자 부모의 경제력이 대학 입시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많이 줄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칠레 학생들은 수능처럼 국가시험을 보고 시험 점수에 따라서 대학에 지원한다. 칠레 대학은 전통 명문대와 신흥 명문대가 신입생 총원의 각각 반을 차지한다. 전통 명문대를 지원할 때는 전통 명문대 컨소시엄이 제공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지원하는 학교와 학과를 6개까지 선택한다. 컨소시엄은 학생들의 시험 성적과 희망 학과 순위에 따라 1개 학교의 입학증을 준다.

반면 신흥 명문대를 지원하면 한국처럼 학생들이 학교에 지원서를 내야 한다. 문제는 입학 도장을 받으려면 1년 등록금과 맞먹는 보증금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신흥 명문대는 주로 수도권에 있다. 외곽에 사는 가난한 학생에게는 대학에 지원하러 가는 여비조차 버겁다.

이런 구조에서는 여러 학교에 보증금을 낼 여유가 있는 부모를 가진 학생이 유리하다. 신흥 명문대에서 입학 허가를 받는 동시에 전통 명문대에 배짱 지원할 수 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학생은 전통 명문대를 지원할 때 하향 지원한다.

2012년 상당수의 신흥 명문대가 전통 명문대 입시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이로써 온라인으로 보증금 없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 범위가 기존 50%에서 약 80%로 늘어났다. 즉 학생들의 탐색비용이 줄었다. 부모 배경에 따라 입시 결과가 달라지던 정도가 반 정도 줄었다.

칠레 사례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어느 사회든 학벌이나 부모의 재산 등 자원이 적은 사람은 탐색비용을 부담스러워한다. 자원은 정보와 돈에서 나온다. 이 두 가지가 있으면 탐색비용이 문제가 안 된다. 한국은 입시 제도가 복잡하다. 제도가 복잡하면 탐색비용이 높아진다. 탐색비용을 줄여야 한다. 아직 한국 자료는 마땅한 게 없어서 한국 대학 입시를 못 다뤘다.”

-교육과 관련된 논문도 여러 편 썼다. 한국의 대졸 근로자 중 4분의 1이 과잉교육을 받았다는 결과는 놀랍다. 정책적으로 대학 수를 줄여야 하나.

“한국에서 대학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실제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고 들었다. 한 발짝 물러서서 세계 동향을 보면 모든 나라가 국민 교육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한국 대학진학률이 최근 73% 정도 된다고 알고 있다. 한때 80% 수준에서 좀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높다고 나쁜 건가? 모르겠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걸 못해서 한국을 부러워한다.

대학 구조조정 말고도 다른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전반적인 경제 산업이 지적 창조력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적 창조력을 요구하는 직장이 늘어난다면 높은 대학 진학률이 오히려 도움될 수 있다.”

-서울대 학생의 A+ 받는 방법이 화제가 됐다. 교수가 하는 농담 하나 놓치지 않고 적고 외운다. 창의적인 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웃음) 학문을 하려면 ABC부터 배워야 한다. 외우는 게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미국에서 7~8년 교직 생활을 해보니 창의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피나는 훈련을 받았다. 기본 없이는 창의성도 없다. 암기가 기본이 돼야 한다.

암산은 지적 자극제로 수리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될 수 있다. 한국은 쓸 자원이 인적 자원뿐인데 기초 교육이 퇴행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참고로 미국의 많은 학생은 계산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고도의 수학 능력이 필요한 공학자를 한국이나 인도에서 수입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기초 교육 강화에 돈을 붓고 있다.”

-창의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질문하면 질문하는 학생도, 질문받는 선생도 생각하게 된다. 선생은 교과서를 기본으로 가르치지만 학생이 질문하면 다시 생각해본다. 그 질문을 듣는 다른 학생들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단순한 질문이 발전할 수 있다. 중국만 가도 학부생이 이상한 질문부터 훌륭한 질문까지 다 한다.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학회에 가면 조용하다.”

-강의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대학 강의실에서는 토론만 하면 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동영상 강의를 보고 와서 강의실에서 자연스럽게 토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동영상 강의로 내용만 전달하고 시험만 보면 편하지만. 나는 메릴랜드대학에서 노동경제학을 강의한다. 수강생이 대부분 3~4학년이라서 새 학기를 시작하면 졸업 후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공직자, 국제기구, IT 등 매년 수강생 다수가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를 수 있다. 관심 분야에 맞춰 수업 내용을 바꾼다. 내가 가르치는 노동경제학 교과서는 언제나 같지만 학생에 따라 응용은 항상 다르다. 그러면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성별에 따라 임금 차가 있다. 또 여자보다 남자가 관리직에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한국 남녀 교육 수준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여자가 높다. 학교 다닐 때만 봐도 1등은 다 여자 아니었나. (웃음) 그런데 직업을 갖는 순간 남녀 임금 격차가 10%에 달한다. 같은 학교와 학과를 나왔고 나이도 같은데 그렇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고 여성의 관리직 비중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성별 격차를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여성에 대한 차별. 이건 정책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다른 요인은 여성이 남성보다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도전정신(competitiveness)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최근 경제학계에서는 여러 국가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도전정신이 약하게 나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성은 왜 도전정신이 약한가. 또 도전정신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여성이 태어나면서부터 맞이하는 문화 배경이 도전을 피하는 성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인도의 모계 사회 부족을 보면 성별로 도전정신에서 차이가 없다.

일부 학자는 성별로 분반하는 교육(남학교나 여학교)이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도 자서전에서 여대를 다닌 게 리더가 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여자만 있으니 남자 도움 없이 눈치 안 보고 공부하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이 주장이 사실인지 데이타를 기초로 한 분석은 매우 적다. 내가 연구해보니 교육 환경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학교 교육보다 부모가 어떻게 키우는지가 관건이다. 부모는 ‘여자애가 이래야지’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면 안 된다. 참고로 부모가 모두 대학을 나온 학생들은 남녀 간 도전정신 차이가 없다.”

-미국에는 여자 경제학자가 많나.

“적다.”

-미국 경제학계에 유리천장이 있는 건가.

“경제학은 차별을 싫어하는 학문이다. 차별은 곧 비효율이니까. 학계에 남는 비율이 여자보다 남자가 높다.

한국에 자주 오지만 충격받는 게 있다. 직장에서조차 ‘여자는 일과 안 어울린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미국이었으면 소송감이다. 한국은 도대체 몇 년대를 사는지 모르겠다. 속상하다.

공직을 시작할 때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 여자 사무관이 딱 3명 있었다. 재경직은 내가 처음이었다. 출근하니 ‘여자애가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충격이었다. 대학 다닐 때까지는 내가 여자라서 못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물론 이후 5~6년이 지나고 나니까 신입 공무원의 반이 여자가 됐다. 사기업과 달리 기수에 따라 승진하니 여자가 밀리는 일도 없고 출산하더라도 보호 제도가 잘 돼 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은 앞으로 여자가 고위직에도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기업에는 여전히 여성의 경력 단절이 많다. 오히려 사기업에서 남녀 차별이 개선되지 않았다.”

-육아휴직제도가 얼른 자리 잡아야겠다.

“제도가 있어도 아무도 안 쓰기도 한다. 육아휴직제도가 있긴 하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못 쓴다. 몇 명이 육아휴직을 더 쓴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관행을 바꾸려면 찔끔찔끔해선 안 되고 거의 전부가 바뀔 정도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 등 복지가 잘돼있다는 북유럽 나라에서도 육아휴직을 처음 도입했을 때는 남자들이 꺼렸다. 정부는 아예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쓰도록 의무로 만들었다. 스웨덴은 육아휴직 중 2개월을 남자가 무조건 써야 한다.”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특히 한국은 공적 영역이 강하다. 정부가 강하게 밀고 나갈 여지가 있다. 강력한 정책 의지가 다른 중진국, 선진국보다 나은 점일 수 있다.”

-현실적인 문제를 많이 다뤘다. 경제학계의 전반적인 흐름인가 아니면 유독 관심이 있는 건가.

“미국 학계에서도 최근 이론보다 실증적으로 자료를 분석하는 흐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직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관련된 현실문제에 관심을 둔다. 한국 문제지만 미국 주류에서 관심 있는 문제를 찾아서 연구한다.”

- 온라인 만남 실험도 했다. 소개해 달라.

“결혼 적령기에 급하게 배우자를 찾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때 자신이 상대를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문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본인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관심이 별로 없는데도 예의상 관심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 이런 경우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내 실험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온라인 데이트에 ‘장미’를 도입해서 해소했다. 실험 참가자는 데이트 요청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지만 오직 2명한테만 장미를 보낼 수 있다. 즉 장미를 받는 사람은 본인이 상대의 호감 ‘탑 2’에 든다는 걸 알게 된다. 연구결과 장미의 효과는 엄청났다. 같은 조건에서 장미를 주면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는 확률이 30% 높아진다.”

-구인 구직시장에서도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당연하다. 남녀 만남과 결혼, 구인 구직 모두 매칭 문제다. 예를 들어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이 직원을 뽑는데 스펙이 좋은 서울 출신의 여성이 지원서를 냈다고 생각해보자.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 지원자가 그냥 지원서를 내본 것인지 정말로 기업에 관심이 있고 열정이 있는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 지원자 역시 이 회사에 정말 관심 있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장미 실험을 적용해보자. 가령 모든 구직자에게 일정 기간 2개 회사만 관심 기업으로 등록하게 해서 회사 측에 이를 알려주는 방법이 있다. 위의 예에서 여성 지원자가 중소기업을 관심 기업으로 등록하고 이를 그 회사가 알았다면 지원자의 진의를 믿고 고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나?

“전미경제학회가 그렇다. 매년 북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박사를 모집하는 2개 학교나 회사를 관심 학교로 지정한다. 매년 12월 중순에 전미경제학회에서 관심 학교 리스트를 해당 학교나 회사에 전달한다.

내가 있는 메릴랜드대도 채용할 때 장미실험을 쓴다. 하버드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일할 박사이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워싱턴DC에 오고 싶어하는 지원자를 이런 방법으로 알아내고 채용한다.”

-성형 수술, 대학 입시, 남녀 만남, 구인 구직 등 한국에 시사점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공직에서 시작했으니 경제학계와 실무자 간 연결을 돕고 싶다. 한국도 미국도 학계와 실무자 연결이 참 어렵다. 경제학자가 보기에 어떤 정책은 하면 안 되는데 정책 집행자는 할 때가 있다. 실업 줄이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또는 효과가 마이너스인데 학계에서 제대로 설명 안 하면 그대로 진행한다. 솔직히 경제학 논문은 너무 길고 어려워서 일반인이 보면 뭐하자는 건지 알 수 없다. (웃음)

독일 노동연구소(IZA)가 주도하는 세계경제학자 네트워크는 경제학 논문을 보도자료처럼 그림과 도표, 핵심 주장으로 나누어 정리한다. IZA는 ‘근거가 있는 정책 수립(evidence-based policy making)’을 모토로 내건다. 정책의 기반이 되는 연구 결과를 제대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도 곧 IZA와 교류한다. 일본으로 출장 갔을 때 한국이 IZA와 교류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마침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 다리를 놓았다.”

-공직을 떠나 2002년부터 유학했다.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준비가 덜 된 채 유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행정고시를 봤으니 학계와는 한 발 떨어졌다. 수학과 수업을 많이 들어야 했는데 어려웠다.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또 하나는 질문. 영어를 못 알아듣는 건 아닌데 쑥스러워서 질문을 못 했다. 미국에서는 아무 말 안 하면 바보로 안다. 차라리 이상한 질문이라도 하는 게 낫다. 말을 해서 제대로 얘기하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말을 해서 헛소리를 하면 중간 정도 평가다. 아무 말도 안하면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 미국 대학원에 온다는 후배가 있으면 전공과 상관없이 꼭 말해준다. 아무리 바보 같은 생각이나 질문도 말해야 한다.

세계 무대에서는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의사소통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에는 완벽주의가 있는지 영어 발음이 틀렸거나 문장 구성이 완벽하지 않으면 영어로 말하기 창피해 한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세계 무대에 절대 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