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음악 서비스 1위 '멜론(Melon)'을 삼켰다. 카카오톡을 서비스하는 모바일 전문 기업 '카카오'는 디지털 음원(音源) 서비스 멜론을 운영하는 콘텐츠·연예 기획사 '로엔엔터테인먼트'(이하 로엔) 지분 76.4%를 1조8700억원에 인수한다고 11일 밝혔다.

카카오톡은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의 92%인 3921만명이 사용한다. 멜론은 총 가입자 2800만명으로 국내 음악 서비스 시장의 최대 업체다. PC와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한 달에 712만명(무료 이용자 포함)으로 2위 업체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카카오톡과 멜론이 결합하면서 모바일 콘텐츠 유통 시장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인수 금액은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 이뤄진 인수·합병(M&A)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2006년 구글이 인수해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 업체로 성장한 유튜브의 당시 인수 금액이 16억5000만 달러(현재 환율로 1조9935억원)였다. SK텔레콤이 국내 케이블TV 1위 업체 CJ헬로비전을 사들인 금액 1조원과 비교해도 거의 2배다. 네이버 공동 창업자 출신으로 지금은 카카오의 최대 주주인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던진 승부수다. 김 의장은 국내 2위 포털 '다음'을 카카오와 합병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콘텐츠 사업을 키우려는 카카오의 행보가 본격화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지나치게 많은 돈을 투자해 향후 다른 사업을 진행하는 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지금까지 카카오의 M&A 최고액은 길 찾기(내비게이션) 서비스 '김기사' 개발사 록앤올을 인수하며 지불한 626억원이었다. 이번에 그 30배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카카오, 멜론 인수해 글로벌 진출 본격화

이번 인수 결정은 카카오 김범수(50) 이사회 의장과 임지훈(36) 대표의 합작품이다. 김 의장은 네이버의 전신인 NHN의 공동 창업자 출신으로, 카카오를 설립해 다시 성공한 '승부사'다. 그가 작년 30대의 임 대표를 '깜짝' 선임했을 때 앞으로 카카오가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임 대표는 벤처 투자를 담당하는 카카오 자회사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지난 2010년 신생 게임사였던 선데이토즈('애니팡' 개발사)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릴 정도로 적극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임지훈 대표는 "로엔의 음악 콘텐츠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카카오톡, 카카오택시 등이 국내 시장을 석권하긴 했어도 세계 시장에서 카카오는 아직 존재감이 약하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3위권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패스(Path)'를 인수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을 꾸준히 시도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한 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로엔이 가진 한류 콘텐츠로 동남아시아 등 시장을 공략해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로엔이 유료 음악 서비스로 쌓은 노하우를 다른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돈을 내고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600만명 정도다. 유료 가입자 중 약 60%인 360만명가량이 멜론 이용자다. 카카오 관계자는 "유료 콘텐츠는 수익과 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웹툰(인터넷 만화), 소설 등 카카오가 보유한 기존 콘텐츠와 음악을 결합하거나, 카카오톡으로 맞춤형 음악 추천 서비스를 하는 방안 등도 예상되고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 1조2000억 차익 남겨

이번 M&A의 최대 수혜자는 외국계 사모펀드다.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Affinity)'가 2만원에 산 주식을 30개월 만에 약 5배로 되팔아 1조2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기 때문이다.

로엔 인수 대금 1조8700억원 중 1조5063억원이 로엔의 최대 주주인 '스타 인베스트 홀딩스'(SIH)에 돌아간다. 이 회사는 어피니티가 로엔 투자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다. SIH는 지난 2013년 7월 1주당 2만원씩 총 2659억원을 주고 SK플래닛으로부터 로엔 지분 52.56%를 사들였다. 그해 11월엔 장외시장에서 주식 313억원어치를 추가로 사들여 지분율을 61.4%로 올렸다. 이 주식을 이번에 1주당 9만7000원에 매각한 것이다.

로엔은 시가총액(주가에 총 발행 주식을 곱한 것)이 2조967억원으로 코스닥 8위 업체다. 이번에 매각된 주식 가격은 직전 거래일인 8일 종가(7만8600원)보다 23% 높다. 유진투자증권 정호윤 애널리스트는 "기업 인수·합병에서 통상 20% 정도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추가되는 점을 감안하면 금액이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로엔 주식은 11일 5.47% 올랐다.

하지만 IT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 금액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 모르지만,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금액인 만큼 비싸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유상 증자를 통해 7500억원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보유 현금 등으로 충당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현금 지출이 다른 사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카카오는 스마트폰으로 택시·대리운전을 호출하는 등 온·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며 "이번 인수로 대규모 지출을 하면 다른 사업 추진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