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사는 맞벌이 주부 하모씨는 출근 길이나 이른 점심 식사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이마트 몰’에 들어가 장을 본다. 퇴근 시간에 맞춰 당일 배송 예약을 하면 퇴근 즉시 저녁 식사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씨는 “평일 낮에 장 보러 갈 시간이 없는데, 채소나 생선 등 신선 식품도 배송 상태가 좋아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싱글남 김모씨는 라면, 생수, 즉석밥, 휴지 등 생필품을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이하 티몬)에서 구매한다. ‘슈퍼마트’ 코너에서 생필품과 간편식품 등을 대형마트 보다 싼 가격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웬만한 생필품을 다 구매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직원들이 온라인으로 주문된 신선식품, 생필품을 배송 바구니에 담고 있다.

이커머스(e-commerce·전자상거래) 업체들의 파상 공세가 국내 유통업계의 지형도를 흔들고 있다. 2015년부터 적극적으로 신선식품, 생필품 판매에 나서면서 대형마트의 지위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빠른 배송, 싼 가격을 앞세워 “생필품은 마트, 공산품은 온라인 쇼핑몰”이란 공식을 무너뜨렸다. 맞벌이 부부, 1인 가구의 증가는 이런 변화를 가속하는 촉매로 작용했다.

이커머스 업체 티몬의 ‘슈퍼마트’ 서비스.

위협을 느낀 대형마트 업계는 전국 점포망을 활용한 당일 배송,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구축, ‘드라이브&픽 서비스’ 등의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 전문가들은 “온·오프라인 매장을 유기적으로 융합하는 ‘옴니채널’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이커머스 판매액 대형마트 추월 "한국, 생필품 온라인 구매 비중 30% 이를 것"

1일 통계청은 지난해 1∼10월 온라인쇼핑 판매액이 43조604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온라인쇼핑 판매액은 해마다 두 자릿수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증가하더니 올해 처음으로 대형마트 판매액(40조2734억원)을 뛰어넘었다. 이커머스가 판매액 기준 국내 최대 유통채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G마켓, 11번가, 옥션의 판매액은 2014년 기준 14조3400억원 수준으로 커졌고, 쿠팡, 티몬, 위메프의 매출은 2010∼2014년 연평균 360%씩 증가했다.

일부 사치품을 제외하고 주요 판매 품목이 겹치는 백화점은 2010년에 이미 이커머스에 역전당했다. 2015년 1∼11월 백화점 판매액은 26조3854억원으로 이커머스의 60% 수준이다.

2015년 11월 3일 김범석 쿠팡 대표가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주요 판매품목이던 육류,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을 온라인에서 사는 소비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1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쿠팡의 신선식품 거래량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0% 증가했고, 티몬의 신선식품 매출액은 132%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은 2014년 발간한 ‘이커머스 환경에서의 소비재 시장 동향 보고서’에서 “전세계 소비자 4분의 1 이상(25%)이 식료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집으로 배달 받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전세계 소비자의 절반 이상(55%)이 앞으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칸타월드패널은 ‘글로벌 이커머스 보고서’에서 “일용소비재(FMCG) 이커머스는 중국(34%)에 이어 한국(22%)이 두 번째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전체 일용소비재 시장에서 온라인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13.2%로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칸타월드패널은 “2025년엔 한국의 일용소비재 온라인 판매 비중이 3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웬만한 생필품은 이커머스 채널을 통해 구매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기술로 시장 잠식

이커머스 업체들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간편결제와 같은 기술로 대형마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오프라인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이나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물건을 직접 보고 구매한 즉시 손에 쥘 수 있다”는 점 때문인데, 이 간극을 기술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2015년 상반기부터 일산 지역에 한해 주문 후 2시간 내 배송을 완료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 고객이 주문하기 전에 자체 물류센터에 미리 물품을 사놓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다.

배송시간이 혁신적으로 줄기 때문에 갑자기 생필품이 떨어져도 대형마트에 갈 필요가 없다. 쉽게 상하는 신선식품도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옥션 NFC 주문 서비스 ‘A.태그’.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편리하게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업체도 있다. 티몬은 생수, 휴지 등 자주 쓰는 생필품이 떨어졌을 경우 NFC(근거리무선통신)가 내장된 자석에 휴대전화를 갖다 대면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슈퍼태그’ 서비스를 내놨다.

옥션이 선보인 NFC 주문 서비스인 ‘A. 태그’는 2015년 10월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출고량 15만개를 돌파했다.

사물인터넷 기반 서비스는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은 2014년, 상품을 스캔하거나 음성으로 제품명을 말하면 아마존의 온라인 장바구니에 추가되는 단말기 ‘대시(Dash)’를 선보였다. ‘하기스’, ‘질레트’처럼 특정 제품의 브랜드가 적혀 있는 버튼형 기기인 대시버튼(dash button)은 4.9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인 징동(京东) 역시 2015년 11월 아마존 대시버튼과 유사한 원클릭 주문 결제 버튼 ‘제이디나우(JD Now)’를 선보였다.

아마존 대시.

성민현 KT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아마존은 센서를 활용해 관련 생필품이 소진되기 전 자동으로 주문해 주는 업그레이드 대시 서비스까지 준비하고 있다. 전체 상거래 매출의 3분의 2가 기존 고객의 재구매에서 창출될 만큼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 대형마트, 옴니채널로 탈출구 모색

이커머스의 외연 확장은 대형마트 매출액 하락으로 연결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5년 3분기(7~9월) 대형마트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7% 줄었다고 밝혔다. 2012년 1분기(0.1%) 이후 14분기 연속 감소했다.

대형마트 업계가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은 ‘옴니채널’이다. 모바일,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오프라인 점포 픽업데스크에서 제품을 수령하거나, 온라인몰에서 주문하면 가까운 점포에서 당일 내 배송을 해주는 식으로 온·오프라인 채널을 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살려 이커머스 업체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

이마트는 2020년까지 수도권 중심으로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6개를 구축할 계획이다. 온라인 채널인 이마트몰에서 구매하면 당일 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물류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신선식품과 냉동·냉장 가공식품의 경우 전용 아이스 포장 박스 등을 통해 온도를 유지하는 콜드체인 시스템을 적용했다.

홈플러스는 강서점, 잠실점 등 일부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 근처 지역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퀵배송(배송비 4000원)’을 통해 평균 50분 내에 배송받을 수 있도록 했다. G마켓, 11번가 등에 당일배송 전문관을 오픈, 신선식품도 판매하고 있다.

롯데마트 ‘드라이브 앤 픽’ 서비스.

롯데마트 서울 중계점은 2015년 9월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자동차에 탄 채 찾아갈 수 있는 ‘드라이브 앤 픽 (Drive & Pick)’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뒤 원하는 시간에 매장에 들러 찾아가는 픽업 서비스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3사 모두 실시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은 2012년 옴니채널을 선제적으로 도입, 성장 모멘텀을 마련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고 도매업과 소매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유통혁명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