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액화석유가스(LPG) 산업협회가 지난해 9월 24일 도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의 전기자동차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송재철 LPG산업협회 제주협회장은 "제주도가 LPG업계와 논의 없이 전기차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제주도 내 40여개 LPG 충전업체 중 30여개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 자동차를 모두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제주도는 전기차 보급과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탄소 없는 섬(Carbon free island)'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LPG 업계의 반발은 제주도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직면할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다.
제주도의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는 ▲이해관계 충돌 조정 ▲막대한 예산 마련 ▲세계 경제 환경변화 대응 ▲추진 주체의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가 산업전략인 '테스트베드 코리아(TestBed Korea)' 모델이 마주할 위험 요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신재생에너지 정책, 주민 동의가 '우선'…"독일 등 주민참여형 벤치마킹해야"
제주도가 펼치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육·해상풍력 발전 등의 경우 소음과 저주파, 어장 파괴, 생태계 교란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제주도는 2011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 국내 최초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려 했으나 어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 계획은 5년째 표류하고 있다. 대형 프로펠러들이 작동해 물결을 일으키면 어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어족자원 고갈과 어업권 침해에 따른 소득감소, 어선 항로 침해 문제 등을 놓고 주민들과 시행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육지에 건설하는 육상풍력단지의 경우도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재 제주도는 한경, 행원, 삼다, 신창, 성산 등 19곳의 풍력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육상풍력의 단점은 소음, 저주파, 그림자, 낙빙, 산림훼손 등이다. 거대한 구조물인 풍력발전기의 날개(3개)는 분당 12~30회 회전하면서 소음을 낸다. 프로펠러와 기둥이 일직선이 될 때 소음은 더욱 커진다.
또 메가와트(MW)급의 풍력발전기는 높이가 지상에서 100m 이상 되기 때문에 햇빛을 가려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고, 일부 주민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겨울철에는 날개에 붙어 있던 수증기가 얼면서 얼음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육상풍력 단지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풍력발전단지 부지 인근의 주민들은 풍력단지 공사가 시작되어야 개발계획을 알게 된다"며 "주민들에 피해와 희생만 강요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누가 찬성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지 건설 계획 때부터 주민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사전 환경평가와 주민설명회 등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또 주민들이 풍력발전 개발이익을 환원받을 수 있도록 보상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독일 작센주에 있는 다르데스하임(Dardesheim)은 독일의 신재생에너지를 대표하는 마을로 손꼽힌다. 이 마을에서는 4대의 풍력 터빈이 연간 1000MWh의 전기를 생산해낸다. 풍력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 중 일부는 외부에 판매되고 수익금은 지역 공동체와 마을 주민들에 환원된다.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제공되면서 풍력단지를 반대했던 주민들도 이제는 신재생에너지 전도사가 됐다.
풍력발전 강국(強國)인 덴마크는 2000년까지 해당 지역의 가구가 투자한 조합이 풍력터빈을 소유하는 '주민참여형' 개발 사업을 펼쳤다. 그 결과 17만5000 가구가 풍력터빈 84%를 소유하고 있다. 수도 코펜하겐 인근 해상에 조성된 주민참여형 풍력단지의 경우 연간 40MW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8650명의 주민이 이 풍력단지에 투자했다.
고태호 제주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풍력발전에 대한 주민의 수용도와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정책적 혜택, 마을발전 기금 조성, 주민 소득 증대 방안 등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특히 풍력단지 건설에 지역자본 투자와 주민 출자를 우대해 주민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생 개발모델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기차 시대에 맞는 '규제 완화' 준비해야
현행 자동차 관련 규정은 내연기관 자동차에 맞춰 설정돼 있다. 그러나 자동차 정기검사 항목인 배기가스, 엔진오일 점검은 전기차에는 적용할 필요가 없다.
전기차 충전시설에 대한 새로운 규정도 필요하다.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는 충전시설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관리사무소나 자치회 동의 없이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기 어렵다.
다행히 제주도의 전기차 사업은 지난달 14일 정부가 발표한 '규제 프리존'에 선정됐다. 올해 1분기 중 전기차용 안전검사기준과 전기차 전용 번호판, 공영주차장 및 공동주택 건설시 전기차 주차구역 확보 의무화 등의 규정이 도입된다.
전기차 활성화로 파생되는 새로운 영역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제주도 내 전기차가 늘어나면 배터리 교환과 재활용 수요가 확대될 것이다. 이 때를 대비해 배터리 성능, 안전에 대한 공인인증을 담당할 기관도 있어야 한다. 이 밖에 전기차 전문인력 양성, 전기차 안전교육 등 다양한 영역을 전기차에 맞게 다시 만들어야 한다.
중고 전기차 시장의 등장도 준비해야 한다. 2013년 제주도에 보급된 전기차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에 2년의 매매 제한 기간이 끝났다. 렌트카로 사용되는 전기차도 중고차로 판매될 가능성이 있다. 전기차는 매년 신모델이 나오고 있어 기존 모델 가격이 비교적 빨리 떨어질 수 있다. 중고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면 제주도의 전기차 보급 속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손상훈 제주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기차에 적합한 규정이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 진척 속도가 늦다"며 "전기차 보급에만 집중하지 말고 과제발굴·지원방안 연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원희룡 지사가 떠난다면?
2004년 제주도에서 텔레매틱스 시범 사업을 했던 한 관계자는 공무원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면 공무원 입장에서 일거리뿐 아니라 법이나 시행령 변경으로 책임져야 할 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내려와 공무원을 설득했던 일이 기억 난다"고 말했다.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 관계자는 "원희룡 지사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어 이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편이지만 원 지사가 물러난 뒤에도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도지사가 바뀔 경우 정책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임기가 2018년 끝나는 원희룡 도지사는 2017년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초저유가 복병 만나....파리 협정은 호재
급변하는 국제 환경도 변수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발전설비를 모두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초저유가'라는 복병을 만났다. 실제로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신재생에너지 투자 열기가 식었다.
정부도 재정 부담 증가를 이유로 신재생에너지 지원 규모를 줄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2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용과 전력 판매가의 차액을 지원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폐지했다. FIT 폐지 전 지원이 결정된 사업자들은 총 15년(태양광은 20년)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FIT 예산 규모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6년 FIT 예산은 3226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243억원 줄었다.
반면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결과는 제주도의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에 호재다. 세계 195개국 정부 대표들은 지구 온도를 낮추자는 '파리 협정'을 채택했다.
김현철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저유가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연구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파리 협정을 통해 국가들이 탄소를 줄이기로 한 만큼 신재생 에너지 투자에 대한 관심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급속 충전기 1대 3천만원, 전기차 보조금 2천만원...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예산
내연기관차는 1회 주유로 300㎞를 운행할 수 있지만 전기차의 완전충전 주행거리는 91~148㎞에 그친다. 배터리 충전시간도 급속 충전기는 20~30분, 완속충전기는 5시간 정도 걸려 내연기관차보다 불편하다. 앞으로 제주도 내 전기차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충전소를 대폭 확충해야 하는데,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제주도는 전기차 구입 도민에게 완속충전기 설치 비용을 지원한다. 완속충전기 가격은 150만원이지만 전기공사비용·안전장치 설치비 등을 포함하면 완속충전기 1대를 설치하는 데 600만원이 들어간다. 환경부가 제주도 곳곳에 설치하는 급속충전기는 기기값만 3000만원이다.
환경부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산과 인프라 비용 해결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던 급속충전소를 올해부터 유료로 전환한다. 지난해 7월 제주도에 문을 연 국내 첫 민간유료충전사업자인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도 유료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전력이 대주주로 있는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는 올해 제주도에 전기차 충전소 32곳(급속 31기·완속 30기)을 구축했다. 오는 2018년까지 제주도 내에 300곳의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목표다. 예상되는 사업비는 80억~90억원이다.
제주도는 '탄소 없는 섬'을 목표로 2030년까지 도내 37만7000대의 차량을 모두 전기차로 교체하겠다고 선언했다. 제주도의 1차 목표는 2017년까지 전기차 대수를 3만대까지 늘리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 내 전기차수는 2263대로 전국에 보급된 전기차의 38%를 차지한다.
그러나 전기차가 확산될 수록 예산 부담은 늘어난다. 제주도는 전기차를 구입한 도민에게 국비 1500만원, 제주도 지원금 800만원을 합쳐 2300만원을 지원한다. 보조금이 적용되면 전기차 구입 가격은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전기차 보조금 예산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보조금을 줄이면 전기차 보급 속도가 둔화된다"며 "2015년 전기차 보조금을 200만원 삭감한 광주광역시는 보급 목표량 100대 중 70대 밖에 채우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