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가 이곳인데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 가사, 양육을 병행하는 사람들 설 자리를 만들어 달라. 80% 이상이 여성인 면세점 근로자들이 살아갈 대책을 만들어 달라.”

혹한 속에 특허권을 잃은 면세점 직원들이 절규하고 있다. 피켓을 든 그들의 눈가에는 마른 눈물 자국에 남아 있었다.

지난 11월 졸지에 특허권을 잃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SK 워커힐 면세점 직원들이 눈물겨운 겨울을 나고 있다.

휘황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 까르띠에, 발리, 에트로, 마이클 코어스 등 고가 브랜드의 값비싼 보석과 액세서리를 팔지만, 매장을 나서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처지다.

2200명이 넘는 직원들이 5년 마다 특허권을 재심사하는 법안으로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면세점 사업권을 손에 쥔 신세계와 두산이 “최대한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폐점을 재촉하는 시계 소리는 새 직장을 찾지 못한 직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월드타워점은 12월 31일 특허권이 끝난다. 하루 반이 남았다. 워커힐 면세점은 11월 16일 이미 특허가 만료됐다. 2016년 2월 14일. 워커힐 면세점 직원들은 지금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2000억원어치의 고가 사치품을 팔고 있다. ‘눈물의 폭탄세일'은 가격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눈물을 뜻하는 말일지 모른다.

◆ 터전 옮겨야 하는 직원들피켓 들고 눈물

“국내 면세점 업계 매출 3위 매장인 월드타워점이 특허를 못 받을 것으로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다른 면세점에서 일 자리를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5년 마다 삶의 터전을 옮기라는 말인가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직원들은 12월 초부터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하루 세 번씩 근무시간을 피해 교대로 피켓을 들고 고객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멀쩡한 정규직을 5년 계약직으로 만드는 시한부 특허 폐지해달라.”

시위에 참여한 이모씨는 “먹고살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울먹였다.

서울 시내 면세점 심사에서 탈락해 실직 위기에 놓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직원들이 성탄절인 이달 25일 오후 매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성탄절인 12월 25일에도 매장 앞에 나섰다.

“5년 후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설 수도 있습니다. 가족 생각에 잠을 설칩니다. 1만5000여 면세 근로자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흰색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절규했다.

워커힐 면세점 직원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중국에서 돌아와 집 계약한 지 6개월밖에 안됐는데, 다른 직원들이 ‘매장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한 하청업체 직원은 “폐점 날짜가 확정됐다. 하지만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 “고용승계 전망 불투명”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워커힐 면세점에서 일하는 직원은 정규직 350여명, 파견직원 1850명이다.

그룹 총수들은 고용 승계를 약속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11월 15일 “면세점 직원들에 대한 고용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두산 동현수 사장도 “다른 면세점 인력을 흡수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두산 면세점 관계자는 30일 “최대한 인력을 흡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월드타워점 근무 인원이 워낙 많아서 수용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면세점 심사에서 탈락해 실직 위기에 놓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직원들이 성탄절인 이달 25일 오후 매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세계도 고용 승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합류를 원하는 인력을 승계하겠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워커힐 면세점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100% 승계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SK그룹 내 계열사로 이동하길 원하는 분들도 있으니 그분들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완곡한 표현이지만, 고용 보장은 어렵고 상당수는 새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2013년 부산 김해공항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서 롯데 면세점이 탈락한 뒤 39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여전히 250여명이 실직 상태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세 명 중 한 명 만 새 직장을 구했다. 나머지는 실업자 신세다.

롯데는 “월드타워점의 정규 직원 150명의 고용은 보장한다”고 했다. “1000여명의 하청업체 파견 직원들도 소공점, 코엑스점 등 다른 지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여건을 열어두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나 고용하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세 명 중 한 명이 될지, 두 명이 될지 누구도 모른다.

◆ 박 대통령 면세점 문제 지적 전문가들 "특허권 10년으로 복귀해야"

정부, 정치권, 학계에서도 면세점 특허권 기간이 짧다는데 이견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면세점의 사업권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은 1분 만에 통과됐다. 일부의 인기영합적인 주장과 생각이 결국 많은 실업자를 낳고 직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며 삶의 터전을 빼앗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디 어려운 취업을 이룬 분들이 거리에 나가지 않도록 국회가 국민 편에 서서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지적한 관세법 개정안은 2012년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은 각각 2005년, 2006년에 특허를 얻어 올해로 특허 기간이 만 10년이 됐고, 워커힐 면세점은 2010년 특허 기간을 5년으로 신청해서 올해 특허가 만료됐다.

에비뉴엘 월드타워점과 연결된 면세점 7층 에스컬레이터 앞 안내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12월 31일 특허가 만료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5년은 비상식적이다. 면세 사업자가 본전도 뽑기 힘들다. 특허권 기간을 원래대로 10년으로 바꾸고, 면세점 입지, 상권, 설립 가능 숫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면세점 관계자는 “기존 면세점들은 물론이고, 신규 진입 업체들도 적정 특허기간은 10년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언급과 정치권 개정 움직임이 있어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겨울 당장 갈 곳이 막막한 면세점 직원들의 앞길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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