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두산그룹에 큰 고비가 될 것이라는 말이 증권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두산그룹의 자금줄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 두산엔진의 실적 턴어라운드(turnaround·흑자로 실적 개선) 여부에 두산그룹의 운명이 달려있다. 일부 긍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상황이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두산그룹의 앞날을 놓고 여러 말이 많지만, 숫자만 보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 매각에 성공하며 한 고비 넘겼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논란의 영구채가 있다.

지난 2012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KDB산업은행 임직원들이 영구채 발행 협약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12년 온갖 논란 속에 5억달러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2007년 밥캣 인수 때 차입한 자금 상환을 위한 결정이었다. 영구채는 회계 기준상 부채로 분류되는 채권과 자본으로 분류되는 주식이 결합돼 있는데, 두산그룹은 자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지만, 결국 금융당국까지 나선 끝에 영구채를 자본으로 인정해줬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누가 했던가. 두산인프라코어가 어렵게 발행한 영구채는 내년부터 두산그룹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영구채에 올해에만 180억원을 배당해야 한다. 2017년 이후에 채권을 회수하지 않으면 영구채 배당률은 현재 3.25%에서 8.25%로 급증한다. 2020년부터는 배당률이 10%가 넘는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자보상배율이 1도 안 되는 부실기업이다. 현재의 경영활동으로 이자비용도 못 벌고 있는데 2020년부터는 영구채 배당금으로만 500억원 이상이 나가야 한다. 영구채 발행에 성공한 이후 두산인프라코어 재무담당자들은 샴페인잔을 부딪쳤겠지만, 실상은 더 큰 위기의 전조를 몰랐던 셈이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물꼬를 튼 이후, 국내 기업들은 줄줄이 영구채 발행에 나섰다. 부채비율을 높이지 않고 채권만 발행할 수 있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영구채를 찍어댄 것이다. 조금 바꿔서 생각하면 정상적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회사들이 주로 영구채 발행에 나섰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에 영구채 발행에 나선 회사들은 두산중공업 유럽 자회사, 풀무원식품, 현대오일뱅크, 신세계건설(034300), 대한항공(003490), 현대상선, 코오롱인더스트리, CJ제일제당(097950)등이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제 기업들이 발행하는 영구채에 사실상 부채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신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