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직원 A씨는 몇 해 전 산업은행(이하 산은)에 대해 안좋은 선입견을 갖게 하는 사건을 겪었다. 산은 직원 B씨가 채권단 회의 도중 화장실에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해 한 상장기업의 주식을 매매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A씨는 "B씨가 주식을 매매한 해당 상장사는 당시 회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기업이었다"면서 "그 광경을 본 이후 산은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A씨는 또 "산은에 다니는 지인이 있는데 그 지인 역시 주식 매매를 많이 한다"면서 "산은은 기업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는 조직인데 규제가 좀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권에서는 산은 직원들의 주식 매매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 전직 부행장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매매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의 내부통제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라며 "이런 도덕적 해이 분위기가 결국 자회사나 투자회사의 관리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2004년에도, 2011년에도 "주식매매 통제 강화하라"고 했던 감사원
감사원은 지난 2011년 산은 감사에서 주식 매매와 관련한 내부 통제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은 행원 C씨는 2009년 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무려 3만2704회(일평균 94.5회)에 걸쳐 주식을 매매했다. 또 전체 임직원의 14.8%인 362명이 근무시간에 사적으로 주식을 거래했다. 소속 직원들의 복무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부점장 이상의 관리자 15명도 근무시간에 사적으로 주식을 거래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지난 2004년 감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은의 한 직원은 직원들로부터 60억여원을 모아 근무시간 도중 주식을 매매했다. 감사원은 2004년에도, 2011년에도 산은에 "주식거래 사이트 차단, 정기 점검 등 내부 통제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주식 투자와 관련한 내부 규제가 여전히 미흡하다. 국회와 금융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의 전체 임직원이 주식투자시 신고해야 하는 것과 달리 산은의 경우 M&A실, 자금운용실, 사모펀드1·2실 등 일부 부서 임직원만 신고하면 된다. 기업은행의 경우엔 여신심사센터, 기업개선부도 신고해야 하는데 반해 산은에서는 기업금융 일부 부서가 제외돼 있다. 기업은행은 전체 직원 중 529명이 신고 대상인 반면 산은은 162명만이 신고 대상이다. 거래횟수나 거래 한도 제한도 없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9월 산은 국정감사에서 "산은은 대기업, 중소기업 다수에 여신을 지원하고 기업구조조정 업무도 맡는데 주식 거래를 제한하는 범위가 너무 좁고 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규제가 미흡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는 산은이 스스로 관리에 나서야 하는 부문"이라고 말했다.
◆ 부행장이 내부 정보로 주식투자…"터질게 터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송재용 전(前) 산업은행 부행장이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매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그는 "억울하다"고 했으나 산은 부행장 직위를 이용해 얻은 정보로 주식 매매에 나섰던 사실이 재판 결과에서 드러났다.
송 전 부행장은 2011년 5월 일본 도시바가 산업은행 관리 하에 있던 유니슨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차명으로 유니슨 주식 2만7000여주를 매수했다. 이후 유니슨 매각 공시가 나온 뒤 주가가 급등하자 7500여만원의 차익을 남기고 되팔았다. 그는 또 2010년 3월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주식 1만주를 1억1100여만원에 산 다음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한다고 발표한 후에 보유 주식을 되팔아 3600여만원의 차익을 챙겼다.
지난 9일 재판부는 송 전 부행장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추징금 7574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산업은행 부행장 지위로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한 죄질이 무겁다"면서도 "다만 성진지오텍 매매건의 경우 M&A 정보를 알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유니슨 건에 대해서만 미공개정보 이용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송 전 부행장에 대한 재판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금융권에서는 "터질 사건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산은의 한 관계자 조차 "산은 직원들의 주식 매매는 우려되는 수준"이라며 "이참에 내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