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금융의 '맏형' 산업은행의 투자회사 관리 실태는 허술함 그 자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투자업체 관리실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한 결과, 투자대상 선정 과정부터 경영참여, 사후관리 등 전 분야에서 8가지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됐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산업은행의 내부 사정은 어떤 모습일까. 조선비즈가 그 실태를 취재했다. [편집자주]
2015년 초 산업은행(이하 산은)의 한 직원은 '분식회계 적출 시스템'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량 자회사로 평가받는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위험치가 높은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정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상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단지 대우조선이 여신 규정상 정밀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산은의 분식회계 적출 시스템은 자회사, 투자회사, 여신제공기업을 대상으로 재무제표를 점검하는 프로그램이다. 재무제표 주요 지표의 내용이 현격히 변동되거나 미심쩍은 부분이 드러날 경우 경고문이 나오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분식회계 적출 시스템에 따르면 대우조선의 2014년 분식위험점수는 58점이었다. 35점 이상이면 분식회계 가능성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가된다. 2013년에도 대우조선의 분식위험점수는 39.5점에 달했다. 대우조선은 2013년부터 매출채권 회전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자금 부담이 발생할 수 있는 상태였다. 또 뚜렷한 원인 없이 매출채권이 늘고 있어 자의적으로 이익을 계상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됐다.
◆ "대우조선은 정밀 점검하지 않아도 되는 기업" 산은의 도덕적 해이
산은을 비롯한 은행들은 출자하거나 대출을 해준 기업을 감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런 내용은 여신심사 규정에 나와 있다. 여신심사 규정에 따르면 은행은 부실기업은 물론이고 정상 회사에 대해서도 분식회계 적출 시스템 등을 통해 재무제표를 점검해야 한다.
감사원은 9월부터 지난 12월 9일까지 진행한 산은 현장감사(실질감사)에서 산은이 자회사인 대우조선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분식회계 적출 시스템을 통해 재무제표에 이상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정밀 실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경우 정부와 공동 출자한 기업이어서 (정밀 감시) 대상이 아니다"라는 궁색한 해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대우조선이 산업은행법상 여신심사 규정의 예외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예외적용 대상이란 '정부와 산은이 각각 또는 합계해 과반의 지분을 출자한 사업체'다.
현재 산은과 금융위원회의 대우조선 지분은 각각 31.5%와 12.2%다. 두 기관의 지분을 합쳐도 50%에는 모자라지만 산은은 국민연금 지분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5년 3월말 기준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지분을 7.1%를 보유했다. 국민연금 지분을 포함하면 과반의 지분을 보유한 셈이라 분식회계 적출 시스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용납하기 어려운 해명이라는 입장을 산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을 통해 이상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넘어갔다면 징계를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게 감사원의 입장이다.
또 산은은 지난 2002년 대우조선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자회사로 편입한 이후 무려 14년 동안 한번도 현장점검(동태 점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업 여신심사 규정에 따르면 은행은 투자회사에 대해 최소 분기에 한번씩 현장 점검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산은은 정부와 공동 출자한 기업이라며 대우조선 현장을 한번도 실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은은 2000년 대우조선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에 2조4000억원가량의 국민 혈세를 투입한 대우조선을 허술하게 관리하고도 은행업 여신심사 규정만 들이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0년 넘게 보유한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도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고 지적했다. 결국 산은은 수출입은행과 공동으로 대우조선에 4조3000억원을 추가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 CFO 파견-MOU 체결 효과 '무용지물'
감사원은 산은이 대우조선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도 경영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했음에도 경영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은과 대우조선은 2002년 대우조선이 한차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을 졸업했을 당시 경영관리 관련 MOU를 체결했다. MOU를 맺은 만큼 산은은 대우조선의 경영 실태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재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MOU에 따른 경영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은 또 대우조선에 파견된 산은 출신의 CFO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은은 전문성을 갖춘 CFO를 파견해야 자회사 실태를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며 투자회사들에 CFO를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CFO가 대우조선 개선사항을 산은에 건의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전문성이 있는 CFO를 파견했다면 CFO를 매개체로 더 적극적으로 경영 실태를 관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우조선 해양플랜트사업 박차 가할때도 나몰라라
감사원은 산은이 대우조선의 경영 전략을 전혀 점검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일례로 2011년 이후 대우조선이 해양플랜트 수주를 본격화할 당시에도 산은이 해양플랜트사업을 제대로 분석한 적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산은이 자회사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주요 사업의 실태와 전망을 점검할 의무가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산은은 여러 경로를 통해 대우조선을 관리할 수 있었음에도 사실상 방치해왔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라며 "감사원의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산은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과 관련해 "세부적인 내용은 답변서를 쓰는 당사자만 알고 있다"면서도 "대우조선을 계기로 드러난 문제들이 있다면 앞으로 보완해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투자업체 실태에 대한 현장실사를 마친 감사원은 산은으로부터 답변서를 받은 뒤 내부 논의를 거쳐 내년 3월쯤 징계 여부 및 수위를 최종 확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외에도 금융감독원이 이르면 이달 안에 대우조선을 대상으로 분식회계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감리에 나선다. 대우조선이 부실을 감췄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삼정회계법인·삼일회계법인의 조사에 따르면 대우조선이 감춘 적자 규모는 약 6조원대에 이른다. 금감원 감리 과정에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의혹이 뚜렷이 드러날 경우 산은은 또 한번 문책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