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모바일·온라인 만화) 서비스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들어 '종이 만화책'을 세 권 출간했다. 인기 웹툰을 대상으로 독자들의 사전(事前) 주문을 받아 목표액 300만원을 넘어선 작품들을 종이책으로 만들어 제공한 것이다.

올 7월 출간된 첫 번째 종이책 '여자 제갈량'은 목표액의 10배가 넘는 3500여만원을 모았다. 반응이 좋아서 일반 서점에도 공급했는데 초기 물량 2000부가 모두 팔려나갔다. 현재 3쇄까지 찍었다. 로맨스 분야 1위 웹툰 '우리사이느은', 가정 폭력을 주제로 다룬 웹툰 '단지'도 종이책으로 만들어 최근 서점 판매를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콘텐츠 유통 공식(公式)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엔 서점이나 영화관 등 오프라인에서 검증된 콘텐츠를 스마트폰용으로 바꿔 제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모바일·온라인용으로 먼저 내놓은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 오프라인으로도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먼저 모바일에 콘텐츠를 띄워서 '간'을 보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에서 '간' 보고 오프라인으로

유아·아동 교육 앱(응용 프로그램) '핑크퐁' 시리즈를 서비스하는 스마트스터디도 이달 초 '핑크퐁 사운드북'이란 종이책을 냈다. 전 세계 100여 개국 앱장터(앱스토어)에서 교육 부문 매출 1위를 기록한 '핑크퐁 인기동요' 앱의 인기 콘텐츠를 골라 종이책으로 만든 것이다. 버튼을 누르면 10곡의 인기 동요가 흘러나오는 그림책으로 현재 온라인에서 판매 중이다. 이달 말에는 오프라인 서점에도 내놓을 계획이다.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가능하면 많이 팔아서 핑크퐁 앱을 알리는 것이 1차 목표다.

네이버에서도 최근 9년 만에 웹툰 연재 1000회를 맞은 조석 작가('마음의 소리')를 비롯해 주호민('신과 함께'), 이종범('닥터 프로스트'), 양영순('덴마') 작가 등이 모바일·온라인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종이책을 출간하며 오프라인 서점으로 진출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웹툰뿐 아니라 인기 웹소설 작가들도 출판사와 손잡고 종이책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콘텐츠 만들기 전부터 시장성 검증

모바일 같은 가상공간이 콘텐츠 생산·유통의 전초기지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모바일을 창업(創業) 혹은 창작(創作) 무대로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만화책을 출판하려면 출판사 등 콘텐츠 유통망을 쥐고있는 회사를 돌아다니며 '제 작품 한번 봐달라'고 사정해야 한다. 모바일 무대는 다르다. 집에 컴퓨터 한 대만 달랑 놓고도 자신이 제작하고 싶은 만화·소설·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앱, 블로그를 통해 유통하면 된다. 제작·유통 과정에 진입하는 문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진 것이다.

둘째, 모바일은 오프라인보다 콘텐츠 확산 속도가 빨라서 손쉽게 전 세계인의 반응을 떠볼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일종의 '테스트베드(test bed·시험 무대)' 역할이다. 카카오는 작년 9월부터 콘텐츠 제작을 위한 온라인 모금 서비스 '스토리펀딩'을 운영 중이다. 영화, 도서 등 자신의 창작 아이디어를 온라인에 올려서 후원자를 모으고, 이 돈으로 창작에 나서는 것이다. 모금은 물론 대중(大衆)으로부터 시장성을 검증받는 효과도 있다.

김귀현 스토리펀딩 서비스 총괄은 "지난 1년간 200여개의 프로젝트가 총 25억원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며 "콘텐츠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셋째, 출판·영화·방송사도 신진 작가나 생소한 콘텐츠를 등용했을 때의 위험 부담을 대폭 낮출 수 있다. 이미 소문이 나거나 인기가 검증된 콘텐츠들이기 때문이다. '밤을 걷는 선비', '순정만화', '이끼' 등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드라마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핑크퐁 앱과 책을 낸 스마트스터디의 김민석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종이책을 읽으면서 모바일 앱의 영상을 함께 본다든지, 앱 내용과 연계된 심화 단계의 책을 제공하는 식으로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 서비스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