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을 겨울에 소개한다는 건 내장산한테 미안한 일입니다. 수많은 식물이 여기저기 내장되어 있는 산이니까요. 그럼에도 이 계절을 기다려 자판을 두드리는 건 겨울철에 더욱 빛나는 보석이 지금 그곳 하늘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식물이면 땅에 가득해야지 왜 하늘에 가득하냐고요? 그 보석이 다름 아닌 겨우살이기 때문입니다.
겨우살이는 다른 나무에 붙어서 양분을 얻어먹고 사는 기생식물입니다. 다른 나무의 잎과 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다가 겨울이 되면 겨우살이만 빈 하늘에 훤히 드러납니다. 흔히들 새 둥지로 착각하지만, 겨울에는 노란색 열매가 햇빛에 빛나므로 쉽게 알아봅니다.
암수딴그루라 열매를 맺는 것은 암그루고, 열매가 없는 것은 수그루로 보면 됩니다. 겨우살이는 약재로 잘 알려진 식물입니다. 사람 손에 닿는 높이의 것들은 채취를 당해서 보기 어렵고 대개는 높은 가지의 것만 남아 있습니다.
내장산도 마찬가지기는 하나 워낙 많은 수가 살아가기 때문에 다양한 관찰이 가능합니다. 땅에 떨어진 것을 손에 주워들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있습니다. 내장사를 왼쪽에 두고 원적암으로 올라가서 백련암으로 내려오는 코스만 돌아봐도 질릴 지경입니다. 처음 내장산에 가서 겨우살이를 본 분들은 평생 볼 겨우살이를 다 봤다고 할 정도입니다.
겨우살이는 워낙 높은 곳에만 있다 보니 관찰할 기회가 적습니다. 그래서 겨우살이가 구사하는 생존전략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문 편입니다. 겨우살이가 번식하는 방법만 해도 그렇습니다.
열매를 쪼아 먹은 새가 부리에 붙은 씨를 닦아내기 위해 나뭇가지에 문지를 때 붙어서 번식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겨우살이의 열매가 끈끈한 과육으로 채워져 있으므로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이야기입니다.
겨우살이의 열매는 지름이 1㎝도 되지 않을 만큼 작으므로 새들이 콕콕 쪼아 먹기보다 삼켜 먹기에 좋습니다. 그러므로 새가 배설로 번식한다는 설이 맞을 확률이 커 보입니다. 과육에서 단맛이 난다는 것은 미각을 감지할 수 있는 동물, 즉 새 같은 동물에게 먹히는 전략으로 번식한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 사실을 아는 분이라 해도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겨우살이는 씨가 나뭇가지에 잘 붙게 하려고 끈끈한 과육을 품은 점 외에 또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열매 안에 든 씨에 달린 기다란 실 같은 조직이 바로 그것입니다. 과육이 터져 그 조직이 걸쳐지기만 하면 바람에 의해 언젠가는 나무에 들러붙게 됩니다.
그러므로 실 모양의 조직은 겨우살이의 씨가 나뭇가지에 부착될 확률을 높여주도록 기능하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이맘때 내장산에 가면 나뭇가지에 걸려 모빌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겨우살이 씨를 볼 수 있습니다.
겨우살이가 참나무에서만 기생한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겨우살이는 참나무 외의 다른 나무에서도 얼마든지 자랍니다. 내장산에서는 내장사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서 있는 모과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볼 수 있습니다.
잘 찾아보면 입구 도로 주변의 느티나무나 벚나무 종류에서도 자라는 것이 눈에 띕니다. 겨우살이는 기본적으로 볕이 잘 드는 높은 나무를 선호하지만, 산당화처럼 키 작은 나무에서 자랍니다.
겨우살이를 내장산에서 가서 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곳에는 붉은겨우살이가 함께 자라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노란색인 겨우살이에 비해 붉은겨우살이는 붉은색이고 겨우살이의 품종으로 분류합니다.
옛 식물도감을 보면 붉은겨우살이는 제주도에서 자라는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비교적 흔하므로 남부지방 또는 온대림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오인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장산을 비롯해 덕유산, 그리고 강원도에서도 드물게 붉은겨우살이가 발견되므로 분포지를 더욱 넓게 봐야 합니다.
얼마 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우수리스크로 가서 발해 성터로 추정되는 곳을 살펴보던 중 겨우살이와 함께 자라는 붉은겨우살이를 발견했습니다. 겨우살이는 우수리스크에서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붉은겨우살이의 경우에는 분포지가 현재 중국까지로만 되어 있으므로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의 발견이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참고로, 우수리스크는 식물학계에서는 흔히 '우수리'라고 합니다. 식물의 학명에서는 'ussuriensis'로 등장해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에서 처음 발견되었거나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일컫습니다. 여우주머니, 구와취, 산일엽초, 나도잠자리란, 소경불알, 산돌배 등도 모두 학명의 종소명이 ussuriensis입니다.
내장산의 겨울에서 붉은겨우살이보다 더 붉은 건 감나무입니다. 감나무의 붉은 감이 알알이 눈에 덮인 풍경은 보기만 해도 마음속이 따뜻해집니다. 까치밥이 연상돼서 그런 모양인데, 내장산에서는 까치보다 물까치가 많고 까마귀란 놈하고 곧잘 다툼을 벌입니다.
내장산은 굴거리나무가 자라는 북방 한계 지점이라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보호합니다. 내장사를 우측에 끼고 나 있는 금선계곡 주변에 있습니다.
굴거리나무는 넓은 잎을 가진 상록수라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서서 눈을 맞으며 자랍니다. 그 모습이 꼭 만병초 같아 엉뚱하게 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실 만병초도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유독성 식물이지만 말입니다.
바닥으로 시선을 옮기면 신기할 정도의 파란색 열매를 단 소엽맥문동이 보입니다. 그 사파이어 같은 색의 열매를 봄까지 매달고 있기도 합니다. 무슨 생각에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각각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법이니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합니다.
아무리 겨울이라 해도 이 정도 식물만 소개하는 것은 내장산이 섭섭해 할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비밀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이 신상에는 좋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달래주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