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앞. 대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연세로 대로변 이곳저곳을 오고 갔다. 대로변에서 ‘신촌 먹자골목’ 이면도로 쪽으로 들어서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안쪽 골목길엔 유동인구가 거의 없었다. 저녁 손님으로 한창 붐벼야 할 시간이지만 테이블 전체가 비어있는 1층 점포들이 꽤 눈에 들어왔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인근 1층 점포에 임차인을 찾는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에 신입생들이 1년간 의무적으로 통학하기 시작한 지 2년째. 대학 1학년생이 빠지면서 신촌 대학가 상권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서대문구가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고 각종 행사도 열지만, 상권 활성화엔 별 큰 도움이 안 되고 있다.

◆ 신입생 송도로 떠나자 매출·임대료 뚝뚝

부동산114에 따르면 신촌 상권 임대료는 2013년 4분기 1㎡당 4만7000원 수준이었지만 5분기 연속 하락해 올 1분기 3만1800원을 기록했다. 올 2분기 3만1900원으로 반등했던 신촌 상권의 1㎡당 임대료는 1분기 만에 다시 3만1400원으로 내려앉았다. 신촌 상권이 집중된 창천동의 상황은 더 심각해, 올 3분기 1㎡당 2만3300원에 그쳤다.

연세로와 가까운 먹자골목 거리가 유동인구 감소로 한산하다.

임대료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해부터 연세대가 4000여명에 달하는 1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수업을 듣도록 했기 때문이다. 신촌 상권이 매출의 60% 이상을 대학생들에게 의존하다 보니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지난달부터 상업시설을 갖춘 백양로 지하캠퍼스가 문을 연 것도 신촌 상인들에겐 또 다른 악재다.

실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연세로 대로변에서만 점포 두 곳에 ‘임대문의’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먹자골목 거리 안쪽으로 접어들수록 불 꺼진 점포가 늘어난다. 일부 2층 점포는 층 전체가 비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16년간 신촌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D 전통주막집도 3~4개월 전 문을 닫았다.

신촌 먹자골목 안쪽 거리. 지나다니는 사람이 적어 한산하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먹자골목 1층 점포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지하나 2층 점포는 공실이 꽤 있고 권리금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임대료는 보통 전용면적 66㎡ 기준 월세 150만~200만원, 보증금은 5000만원 전후 수준이다. 같은 면적의 1층 점포는 대로변과 가까운 건물의 경우 월세는 450만~600만원, 보증금은 1억원 이상을 호가한다.

신촌에서 10년간 호프집을 운영 중인 김재헌(가명·47) 사장은 “대학교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어 사실상 매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은 1학년생인데, 이들이 사라지니 여파가 큰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얼마 전 다른 곳으로 옮길까 싶어 가게를 알아봤는데, 2층이나 지하층 점포는 워낙 빈 곳이 많아 찾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3년간 찌개백반집을 운영해온 송철운(58) 사장은 “처음 들어왔을 때 주변에 소위 ‘잘 되는 집’이 3곳이었다면 지금은 1곳으로 줄었다”면서 “전체 점포 중 절반가량은 인건비만 간신히 건지고, 그마저도 안 되는 곳들이 다수”라고 말했다.

◆ “축제도 도움 안 돼…상권 흡수인구 적어”

서대문구도 이 점을 감안해 신촌 상인들의 모임인 신촌 번영회와 손잡고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피부로 느낄 만한 효과는 적다는 것이 인근 상인들의 주장이다.

서대문구는 일대 교통 혼잡을 줄이고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연세로를 버스만 지나다닐 수 있도록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정하고, 주말에는 이 구간을 아예 ‘차 없는 거리’로 지정했다. 신촌번영회와 함께 워터슬라이드 축제 '2015 시티 슬라이드 페스타', 맥주 축제 ‘신촌 옥토버페스트’ 등을 비롯해 벼룩시장과 같은 이벤트를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창천동 한 공인중개업소 앞에 상가 매물 정보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12년간 D고깃집을 운영 중인 차후성(46) 씨는 “유동인구가 늘어나도 사람들이 대로변 쪽에나 몰리지, 안쪽 골목까지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축제를 해도 지역 상인들과 연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진행됐기 때문에 정작 지역 상인들에겐 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창천동 중앙부동산 이영호 대표는 “상권의 주 수요층인 20대 대학생을 끌어들이고 상인들도 스스로 알릴 수 있도록 행사 내용이 꾸려져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서 “지자체와 행사 기획 주체가 고민해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김학상 신촌번영회 사무국장은 “올 10월에 치러진 옥토버페스트는 준비기간이 짧아 기획단계에서 상인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내년에는 더 철저히 준비해 상권 활성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