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응팔' 봤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 열풍은 여의도 증권가를 비켜가지 않았다. 증권업계 송년회 자리 여기저기에서 1988년 그 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다만 여의도에서 응팔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다.
"1988년 주식시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아? 그 때의 반의 반만 따라갔어도 올해 송년회는 한우 배 터지게 먹으면서 할텐데 말이야."
응팔에 대한 관심은 1988년 주식시장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1988년에 직접 주식시장에서 뛰어다녔던 사람은 거의 없지만, 사람들은 1988년의 전설을 그리워한다.
그 때 그 시절 주식시장은 어땠을까. 종합주가지수부터 상장 종목 수까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해 나갔던 1988년의 주식시장을 되짚어 봤다.
◆ 금리 15%의 전설
"금리가 쪼까 떨어져가꼬 15%밖에 안 된다."
응팔에서 덕선의 아버지 역을 맡은 성동일은 한일은행 직원이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 금리가 15% 낮다고 한탄한다. 1980년대에는 보통 은행 금리가 20%대였으니 15%면 저금리인 시대다. 지금은 1%만 돼도 고금리인 시대다.
서울 올림픽 개최 효과에 힘입어 1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1988년은 최대 호황기라고 평가받을 만큼 경기가 좋았다. 응팔에는 경제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의 대사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5% 금리는 저금리, 은마아파트 한 채는 5000만원이라는 대사를 통해 어림짐작할 뿐이다. 요즘 은마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10억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 500선 맴돌던 주가지수 1년만에 900선으로
주식시장도 호황기의 수혜를 누렸다. 한국 거래소에 따르면 1988년말 종합주가지수 종가는 907.2 포인트다. 525.11이었던 1987년 보다 73%나 상승했다. 연간 코스피지수가 지난해보다 내려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올해와는 대조적이다.
당시 상장된 종목수는 970개. 1987년보다 61% 증가했고, 주주 수는 175%나 늘어난 854만명이었다. 상장 주식 수도 65% 증가한 25억1138만주였다. 그야말로 양적 팽창의 시기였다.
◆ 삼성전자보다 잘 나갔던 포스코
가장 잘 나갔던 기업은 포항종합제철(포스코)였다. 포항제철은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힘입어 1988년 4월 국민주 1호로 상장했다. 당시 포항제철의 시가총액은 3조4666억원으로 시가총액 2위였던 한일은행과 1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현재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당시 시가총액 1조1060억원으로 12위를 기록하며 10위권 밖에 머물렀었다. 8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85조8918억으로 당시 시가총액의 185배가 넘는다. 1988년 삼성전자의 평균 주가는 3만2600원였다. 8일 종가는 126만2000원으로 당시 주가의 38배를 웃돈다.
응팔에서 1억원짜리 올림픽 주택복권에 당첨된 라미란 가족이 단독 주택을 사지 않고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했다면 현재 38억원이 넘는 주식 부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 단연 강세였던 제조업, 대세 업종으로 떠오른 금융업
1988년 상장 업종 중에는 제조업이 강세였다. 조립 금속 제품, 기계 및 장비 제조업이 관련 기업 수 97곳으로 전체 업종 중 비중이 가장 높았다. 화학 석유 석탄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이 기업 수 87곳으로 뒤를 이었다. 음식료품 제조업과 종합건설업은 각각 35곳이었다.
그해 신규 상장한 기업 수는 총 115곳이었다. 포항종합제철, 한양증권, 신한투자금융(신한금융투자), 코오롱상사, 포항종합제철(포스코), 한미약품, 미즈노, 동부투자금융(동부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현재까지 기업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기업들이 다수 상장했다. 그 중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기업 수가 전체 신규 상장 기업의 20%를 차지하는 등 1988년은 금융업이 본격적으로 꽃피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