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비만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198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비만 발병률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추세라면 미국의 비만환자가 2030년에는 1억5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비만 치료제 시장은 크게 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약이 없는데다 있던 약도 부작용이 새로 발견되면서 잇따라 퇴출되고 있다. 환자는 늘고 약은 없는 이 무주공산(無主空山)을 과연 누가 차지할까.

바이오기업들의 약진 두드러져

한동안 얼어붙었던 비만 치료제 시장은 최근 3년 사이에 신약 4가지가 잇따라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2012년 미국 바이오기업 아레나 파마슈티컬의 '벨빅'과 비버스의 '큐시미아'가 비만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았다. 2014년에는 바이오기업 오렉시젠 테라퓨틱스의 '콘트라브'와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가 FDA 허가를 받았다.

최근 허가받은 약은 대부분 식욕을 조절하는 뇌 영역인 시상하부에 작용한다. 과거 출시됐던 비만 치료제들도 같은 영역에 작용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심각한 부작용은 거의 없다. 하나의 약이 모든 것을 맡는 과거와 달리 약효가 다른 약들을 결합해 부작용은 줄이고 안전성은 높였기 때문이다. 콘트라브와 큐시미아가 그렇다. 노보 노디스크도 작년 허가받은 비만 치료제 삭센사에 새로운 약물을 결합시켜 부작용을 줄이는 전략을 펴고 있다.

1947년 미 FDA는 암페타민 성분의 약을 처음으로 비만 치료제로 승인했다. 암페타민은 뇌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데 마약류의 일종이기도 하다. 이후 여러 종류의 식욕 억제제들이 나왔지만 결국 대부분 시장에서 퇴출됐다. 약물 의존성이나 신경계와 심혈관계 이상과 같은 부작용들이 잇따라 확인됐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와 큰 인기를 끌었던 식욕억제제 '리덕틸'도 2010년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후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국내에서만 2009년 1162억원 하던 비만 치료제 시장이 작년 55억원으로 줄었다. 새로 개발하던 약도 같은 처지였다. 프랑스 제약사인 사노피 아벤티스가 야심차게 개발하던 비만 치료제는 2007년 FDA의 허가 신청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미국 머크는 임상3상시험 중이던 비만 치료제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지방 합성 차단하는 차세대 신약

차세대 비만 치료제 후보들의 행보도 빨라졌다. 캐나다의 생명과학 전문지인 '더 사이언티스트(The Scientist)'는 보스턴의 바이오기업 자프겐이 개발 중인 '벨로라닙'을 차세대 주자의 선두로 꼽았다. 벨로라닙은 뇌에서 식욕을 억제하지 않고 지방 조직에 혈관울 만들지 못하게 한다. 결국 지방이 늘지 않아 비만을 막는다. 자프겐사의 최고 의학 책임자인 데니스 김은 "처음으로 시상하부 바깥에 체중을 조절하는 곳이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프겐사는 일단 뇌종양으로 시상하부가 손상되면서 생긴 비만을 치료하는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시상하부가 손상돼 기존 비만 치료제들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벨로라닙은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다. 종근당은 암세포의 혈관 생성을 막는 항암제를 개발하던 과정에서 비만 억제 효과를 발견했다. 회사는 2009년 자프겐사에 벨로라닙을 기술 수출했다.

지방에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백색지방과, 에너지를 태워 열로 없애는 갈색지방이 있다. 더사이언티스트지는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바꾸는 단백질 의약품도 신개념의 비만 치료제로 주목할 만하다고 소개했다.

문현석 고려대 교수(생명공학부)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항암제 시장은 2010년 37조원에서 2020년 54조원으로 10년 새 1.5배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비해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10년 6000억원에서 2020년이면 35조원으로 무려 58배나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제약업계의 블루 오션(blue ocean·경쟁자가 드문 유망 시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