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유동성 확보 계획을 수용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자구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금융당국 및 산업은행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지난달 말 유상증자 및 영구채 발행을 주요 내용으로 담은 자구계획을 산업은행에 전달했다. 현대그룹은 내년 말까지는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지 않을 수준의 유동성 확보 계획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추진 중인 영구채 발행, 유상증자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를 곧바로 퇴짜놓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산업은행과 자구계획과 관련해 논의를 벌였다"며 "하지만 부채 규모와 회사채 상환 일정을 감안했을 때 자구안 내용이 부실하다고 판단해 산업은행 및 채권단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공식적으로는 아직 자구안을 제출하지 않았다"며 "현대 쪽에서도 자구안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부실로 지난 2013년 12월 3조2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고 현재까지 108% 달성률을 기록하고 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해운경기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어 현대상선의 재무구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현대상선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회사채 상환 유예 등의 지원 없이는 회사 운영이 힘든 상황이다.
현대상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에 10월 말 만기 도래 차입금 2000억원을 두달 연장하는 대신 내년 만기 도래 회사채 및 차입금 상환 계획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12일 해당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보유 중인 현대증권 지분과 현대아산 등의 지분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넘기는 방식으로 4504억원을 마련했다.
현대상선이 최근 자금을 마련하긴 했지만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어 추가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태다.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현대상선의 차입금 규모는 6000억원에 달한다. 해운경기가 내년에도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현대상선이 자력으로 차입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이 현대그룹에 보다 근본적인 자구안을 마련토록 한 것도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가 내년에 더 심각해질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가져와야 할 자구안에는 대주주의 사재출연과 같은 근본적인 계획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도 "국민이 현대그룹이 이 정도로 했으니 산업은행도 도와야 한다고 인식하는 정도까지는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산업은행은 애초 지난달 말까지 현대그룹에 유동성 확보 계획을 담은 추가 자구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현대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최대한 방안을 마련해 산업은행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