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전시를 이렇게 열심히 본 적이 없었다. 지난 한 주 내가 사진전을 연 류가헌 갤러리에는 전시장이 두 개 있다. 내가 전시를 한 2관 바로 맞은편에 1관이 있는데 거기에서 성동훈 사진가의 '밀락원'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내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서비스 삼아 성동훈의 전시까지 안내를 했다. 참 열심히 본 남의 전시다. 덕분에 이런 저런 이야기가 떠올라 그 이야기를 쓴다.
성동훈은 젊은 열혈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작년에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의 혼혈아 이야기를 담은 '코피노'라는 사진 작업으로 온빛사진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는 동남아를 오가며 본 쓰레기장과 그 쓰레기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눈에 밟혀 잊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그들을 찾아가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전시장에 가면 그런 그의 마음이 보인다. 전시를 구성하면서 그는 전시장에 쓰레기를 가져다 깔아 놓을까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동료들이 말렸다. 그게 아니라면, 쓰레기장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바닥에 깔아 관객들이 걸어 다니도록 해 불편함을 느끼게라도 할까 싶었다. 그것도 주변에서 말렸다.
전시장 바닥에는 쓰레기도 얼굴 사진도 없다. 하지만 그의 불편함을 느끼게 한 다른 방법들이 있었다. 하나는 사진의 크기와 개수다. 성동훈 작가는 사진을 아주 큰 크기로 프린트해서 액자도 없이 벽에 붙였다. 벽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였다. 쓰레기 사진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육박하는 파리떼 사진은 충격 그 자체다.
다른 전시 하나는 천에 사진을 프린트해 만든 벽걸이 커튼이다. 아이들이 물가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 이 사진 커튼 뒤에는 다른 사진들이 숨어있다. 관객이 천을 젖히면 그 뒤에 아이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도시가 쓰레기를 모른 척하듯이, 보통 사람들은 이 쓰레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르는 척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흔한 이야기다. 평화로운 아이들 모습 뒤에 거친 일이 있다는 거다. 나는 그런 내용보다 이 커튼이라는 형식에서 이 작가의 진심을 보는 듯했다. 작가는, 이를테면 보는 이가 사진을 적극적으로 열어 젖혀주길 바라고 있었다.
말은 쉽지만 사진을 어떻게 열어 젖혀야 할까? 그 방법을 전시장의 또 다른 전시물이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찍어온 사진이다. 성동훈 작가는 아이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주고는 사진을 찍어 오라고 주문했다. 무엇이든 자기 주변의 것을 찍어 오라고 했단다. 그 결과물의 태반이 쓰레기더미였다.
"왜 아이들은 이것을 찍었을까?" "아이들이 사진가 아저씨 흉내를 내느라 쓰레기만 찍은 것인가?" "그렇더라고 왜 쓰레기를 찍었을까? 자기들이 보여줄 만한 것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참 동안의 자문 끝에, 어쩌면 이런 '질문 던지기'가 바로 작가가 원하는, 사진을 적극적으로 열어젖히는 행위 아닌가 싶었다. 그런 생각을 머리에 두고, 다시 성동훈 작가의 사진들을 둘러봤다. 압도당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질문이 또 하나 생긴다. 작가는 전시 전체를 통해 훌륭한 질문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처음부터 자기 사진만으로는 질문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까? 오직 사진만을 갖고서만 지금 같은 전시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까?
이 전시가 스스로 사진가의 고민까지 드러내는 것은 그의 작업이 진짜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찍기와 보여주기에 모두 열심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거다. 젊은 사진가 성동훈은 앞으로 더 좋은 사진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