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도크(선박 건조장)에선 골리앗 크레인 2기로 한 번에 1200톤의 선박 블록을 운반해 조립할 수 있습니다. 1만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선박을 단기간에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습니다.”

11월 24일 오후, 필리핀 마닐라에서 버스로 3시간을 달려 수빅경제자유구역(SBMA)에 위치한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HHIC-Phil Inc.)에 도착했다. 조선소 입구에서 보안 검색대를 거친 후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6번 도크 앞. 가장 먼저 110m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크레인 아래에선 거대한 도크 위에서 아파트 10층 높이(25m)의 선박들이 조립되고 있었다. 폭 135m, 길이 550m, 깊이 13.5m의 도크로 축구장 7개를 합친 규모다. 그 안에서 작업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작은 피규어처럼 보였다.

심정섭(65·사진) 수빅조선소 대표가 11월 24일 조선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6번 도크에서 1만1000TEU 2척, 9000TEU 1척, 30만톤급 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초대형 원유운반선) 1척 등 4척의 배가 동시에 건조되고 있습니다.”

건조 중인 선박 한쪽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도 보였다. 정철상 한진중공업 상무는 “수빅조선소는 지금까지 컨테이너선 59척, 탱크선(석유제품 수송선) 6척, 벌크선(건화물 운반선) 27척, LPG선 8척 등을 건조해 건조 척수 100척을 돌파했다”며 “올해 11월 9일 100척 건조 기공을 기념해 플래카드를 걸었다”고 설명했다.

심정섭(65) 수빅조선소 대표는 6번 도크를 바라보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2006년 5월 수빅조선소의 첫 삽을 떴을 때 초대 법인장이었는데, 당시 이쪽은 전부 갈대밭이었다. 과감하게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이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30도가 넘는 더위에 땀이 절로 흘렀다. 습한 날씨였다. 현장 직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자산매각, 임금반납 등으로 우울한 국내 조선업계와 달리 수빅 조선소엔 희망의 기운이 넘쳤다.

◆ 수빅조선소, 올해 11월 100척 건조 돌파

한진중공업수빅조선소는 2009년 필리핀 수빅만에 완공된 면적 300ha의 필리핀 최대 조선소다. 미군이 나간 자리에 터를 잡았다. 길이 550m, 폭 135m의 초대형 도크, 전체 길이 4km에 이르는 10개의 안벽(岸壁·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하도록 벽면을 가진 선박계류 시설), 골리앗 크레인, 자동화 시설 등 최첨단 설비를 갖췄다. 연간 60만톤을 조립할 수 있다.

수빅조선소는 11월 중순 100번째 건조 선박인 그리스 코스타마레사(社)의 1만1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기공식을 가졌다. 국내 조선소의 해외 현지법인 중 신(新)조선 분야에서 100척 건조 실적을 달성한 것은 수빅조선소가 처음이다.

2007년 1호선 건조에 착수한 이래 컨테이너선, 탱커선, 벌크선을 비롯한 다양한 선박과 육상 플랜트, 해상 플랫폼 설비 등 117척을 수주했고, 95척을 선주에 인도했다. 조선소 누적 매출은 52억달러(6조250억원)다.

조선소가 다 만들어지기도 전인 2006년 2월 4300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했다. 2009년 조선소 완공 이후엔 6600TEU급의 중형 컨테이너선과 11만톤급 원유운반선, 18만톤급 벌크선 등을 건조했다. 2013년부터 20만톤급 벌크선, 30만톤급 VLCC, 1만 TEU급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며 글로벌 조선소로 발돋움했다.

11월 24일 필리핀 수빅조선소 6번 도크에서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이 건조되고 있다. 원 안은 100척 건조를 기념하는 플래카드.

올 4월에는 프랑스 최대해운사인 CMA-CGM으로부터 세계 최대급인 2만600TEU급 극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 3척을 수주했다. 2만 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했거나 건조 중인 조선소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일본 이마바리조선 등 세계에 4곳 밖에 없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강재(鋼材) 하역에서부터 선별, 판넬라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자동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며 “우기가 많은 현지 기후를 고려해 1km에 이르는 생산공장(shop)과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도크 셸터(shelter)도 갖췄다”고 말했다.

조선소 운영에선 노동력 관리가 중요하다. 수빅경제자유구역 내 자체 기술훈련원(SDC; Skill Development Center)을 세워 자체 해결하고 있다. 용접, 도장 등 분야별 기능 인력, 설계 기술 인력까지 현지 인재를 직접 키워 쓴다. 기술훈련원 수료 인원이 4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수빅 조선소 뿐 아니라 필리핀 곳곳의 제조업체로 진출해 필리핀 경제를 이끌고 있다.

현지 생산직 근로자의 생산성은 아직 한국 근로자의 50~60%에 머물고 있지만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평균 월 30만원 정도로 중국 근로자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 대표는 “2018년까지 건조 물량을 확보해 둔 상태”라며 “3년 동안 여유가 있지만, 3년 단위로 조선업 수주가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부터는 신규 수주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24일 수빅조선소 안벽에서 선박 건조 마무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 수빅경제자유구역 내 최대 수출기업 자리매김

수빅조선소는 수빅경제자유구역(SBMA) 최대 수출기업으로서의 입지도 확고하다. 필리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해외 기업 유치 사례로 평가된다.

필리핀은 세계 4위 조선국으로 올라섰다. 클락슨 리서치는 “필리핀 전체 수주량(CGT 기준)에서 수빅조선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87%에 달한다”고 밝혔다. 올해 4월 수빅조선소가 수주량 51만CGT를 기록하면서 필리핀이 한 때 월간 수주량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 완공 무렵인 2009년, 조선소 인근 부지 30만㎡를 매입했다. 조선소의 조기 안정과 중장기 성장을 위해선 현지 근로자들의 주거 안정이 필수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2012년, 3년 전 매입한 토지 중 12만㎡를 현지 카스틸레호스시(市)에 무상 기증한 뒤 주택 1000여채를 지어 근로자들에게 제공했다.

11월 24일 카스틸레호스시에 위치한 한진빌리지의 모습.

‘한진 빌리지’로 명명된 이 사업은 현지 근로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파격적인 분양가와 저금리 장기상환(20~30년)의 특혜에 환호했다.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현재 한진빌리지는 993세대 1차 분양이 끝났다. 2016년 3월까지 추가로 725세대를 더 분양한다.

수빅조선소 근로자인 로렌조(40, Lorenzo Irene Dalwampu)씨는 “수빅조선소에서 일하는 덕분에 아들과 딸을 공부시킬 수 있었다”며 “나의 미래와 가족을 위해 은퇴할 때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진빌리지 부지 내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학교도 있다. 학생 400여명을 교육할 수 있는 규모다.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교육부에 기증한 것으로 공원, 버스터미널, 다목적실, 농구장 등 공공시설도 무상으로 건립해 기증했다. 우천 침수 예방을 위해 주택단지 내 하천보강공사도 완료했다.

11월 24일 한진빌리지 내 종합학교에서 수빅조선소 직원 자녀들이 공부하고 있다.

지속적인 현지밀착형 사회공헌 노력으로 2013년 11월에 산업통상자원부와 필리핀 투자청이 공동주최한 CSR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9월에는 대한민국 주 필리핀 대사관에서 주최한 필리핀 진출기업 대상 CSR 우수기업 선정에서 대규모 고용 창출과 근로자 복지 증진의 공로를 인정받아 ‘화합과 상생’ 분야 대상을 받았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앞으로 수빅조선소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조선부문 핵심 사업장으로 육성할 것”이라며 “상선과 특수목적선에 집중하는 부산 영도조선소와 함께 투트랙 전략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