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등 일본의 수도권(首都圈)이 본격적으로 회생(回生)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10년 '일본의 활기찬 부활'을 슬로건으로 대도시권 중심으로 7개의 국제전략총합특구(特區)를 지정하며 규제 족쇄를 본격적으로 푼 이후 그 효과가 5년 만에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도쿄 도심 등에 조성한 '아시아 헤드쿼터(headquarter) 특구'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특구는 규제 철폐·과세(課稅) 특례 등을 통해 지난해 말까지 아스펜 파마케어(남아공)·타이거 스파이크(호주)·GVS 그룹(이탈리아) 등 총 41개의 다국적 기업 아시아 본부를 유치하는데 성과를 올렸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도 30년 넘게 지속돼 온 수도권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23일 내놓은 '일본의 수도권 정책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도 규제 일변도인 수도권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대도시권 중심으로 국토 거점(據點)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日 수도권 정책 패러다임 바꿔

일본은 1950년대 수도권에 인구와 산업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1958년 수도권 정비계획법, 1959년에는 공업제한법을 만들어 도쿄에 있는 특별구와 무사시노시(市), 미타카시(市)를 공업제한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지역에 공장, 학교 등을 짓기 위해서는 정부의 사전(事前)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신설을 제한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 여파로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기업의 해외 이전(移轉)이 가속화되자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재검토하게 됐다. 1985년 3% 남짓했던 일본 제조업의 해외생산 비율이 1999년에는 15%로 급증한 게 큰 자극 요인이 됐다. 각종 규제와 제한에도 불구하고 일본 총 인구의 26% 정도인 3340만명(2000년 기준)이 수도권에 몰려 사는 등 인구·산업의 지방 분산 효과가 미미한 것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 의회는 첫 단계로 2002년 공업제한법을 폐지했고 일본정부는 2009년부터 수도권 정책의 패러다임을 '규제'에서 '발전'으로 바꿨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7개의 국제전략총합특구를 지정한 것이다. 수도권에만 도쿄 도심의 '아시아 헤드쿼터 특구', 요코하마 가와사키 지역의 게이힝 임해부 라이프 이노베이션 국제전략총합특구, 쓰쿠바시의 쓰쿠바 전략총합특구 등 3개를 지정했다. 해외기업 유치를 위한 비즈니스 환경 정비, 차세대 의약품·의료기기 중점 개발, 생활지원 로봇 실용화 등의 3개 주제로 각 지역 개발에 나섰다.

아베 정부는 이런 흐름에 박차를 가했다. 2013년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도쿄를 포함한 6개의 국가전략특구를 발표한 것. '규제 제로(zero·0)'를 내세우는 이들 특구에서는 설비투자·연구개발(R&D투자) 등에 대해 파격적인 세제 지원을 하고 있다.

"수도권 외 국토균형 발전도 중요"

우리도 국토정책에서 수도권과 비(非)수도권 구분을 없애고 '대도시권 발전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수도권 기업의 해외 이전 가속화, 서비스업 위주로의 산업구조 재편 등 우리나라가 요즘 겪는 사회·경제적 변화는 일본이 수도권 규제를 폐지할 때와 비슷하다"며 "우리나라 제조업의 해외생산 비율이 2002년 4.6%에서 2012년 18%로 높아진 상황에서 수도권 규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갑성 연세대 교수(도시공학과)는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도 세계 주요 대도시를 글로벌 경쟁 상대로 보고 규제완화와 각종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한국만 이런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수도권 규제완화는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원광대 이양재 교수(도시공학과)는 "선진국이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일 때 수도권 규제정책을 포기했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지 무조건 따라가선 안 된다"며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기본적인 대전제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