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점 개관 후 백현동 카페거리 등 "매출 급감" 불만
"월 임대료는 크게 안 낮아져 자영업자들 죽을 맛"

지난 18일 오전 11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의 카페거리는 지나다니는 사람을 손에 꼽을 정도로 한적했다. 중심대로와 맞닿은 1층 점포 중 몇 곳엔 ‘임대문의’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한 빌딩은 2층 상가가 절반 가까이 비어 있었다. 물이 흘러야 하는 주변의 인공 실개천에는 물 대신 낙엽만 쌓여 있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판교 중심상업지구와 거리형 상가인 ‘아브뉴프랑’이 있는 분당구 삼평동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식당, 의류 판매장, 네일숍 등이 영업 중이었지만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간간이 ‘영업종료’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걸어 잠근 가게도 보였다.

지난 8월 현대백화점(069960)판교점이 영업을 시작하자 반경 1㎞ 안에 있는 기존 상권이 타격을 받고 있다. 일부 가게 주인은 매출이 급감했다며 불만을 토로했고 문을 닫는 가게도 늘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에 찾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카페거리. 거리에 사람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 현대백화점 개점 후 임대료 뚝뚝…카페거리 ‘직격탄’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지하 1층에 국내 최대 면적의 식품관(1만3860㎡)을 갖추고 있다. 뉴욕 컵케이크 전문점 ‘매그놀리아’, 이태원 경리단길 맛집 ‘마스터키친’, 대구의 명물 제과점인 ‘삼송빵집’ 등 108개의 식음료 브랜드가 들어서 있다. 지상 5층과 9층에도 식당가가 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들어서면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백현동 카페거리가 당장 타격을 입었다. 이곳은 이국적인 건물이 많고 거리에 브런치 카페와 의류 판매장이 집중돼 있어 20~40대 여성들과 연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카페거리의 상인들은 “현대백화점이 유동 인구를 빨아들인 탓에 매출이 수십%는 깎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B카페 관계자 김정림(44)씨는 “주변 상인들이 올해만큼 ‘최악’일 때가 없다고 하소연한다”면서 “거리 외관이 독특한 덕분에 과거엔 화보나 CF 촬영도 잦았는데, 올 5~6월 이후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입구. 평일 오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손님이 줄면서 건물주들이 재계약을 할 때 월 임대료를 깎아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지역 전용면적 99㎡ 크기의 상가는 보증금이 6000만~1억원, 월임대료가 약 300만~400만원이다. 일부 점포는 7000만~1억원의 권리금이 추가로 붙는다.

백현동 P공인 관계자는 “최근에 계약을 다시 맺은 전용면적 115.5㎡ 상가의 월세가 기존 400만원에서 380만원으로 낮아졌다”며 “건물주들도 사정을 알기 때문에 재계약을 할 때 월세의 5~10% 정도를 낮춰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백현동 B공인 대표는 “의류업종과 카페 등의 가게가 매물로 나와 있는데 상가 임차를 위해 문의하는 사람은 뜸하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주변 상권. 가운데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북쪽에 있는 중심상업지구와 남쪽에 있는 백현동 카페거리는 500~1000m쯤 떨어져 있다.

◆ 아브뉴프랑 인기 점포도 “매출 반 토막”…치킨집만 늘어

거리형 상가인 아브뉴프랑과 푸르지오 월드마크가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도 백현동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엔 식당가와 브랜드 의류 매장, 네일숍과 병원 등을 갖춘 복합 쇼핑몰이 많이 들어서 있다. 공실은 거의 없었고 상가도 대부분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일부 점포엔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삼평동에서 현대백화점 판교점까지는 걸어서 8분 거리이고 상가 업종 대부분이 백화점과 겹친다.

아브뉴프랑의 한 식당에서 근무하는 이진희(55·가명)씨는 “항상 손님들로 붐벼 ‘대박집’으로 꼽히는 대표 식당 두 곳의 매출이 현대백화점이 문을 연 후 절반 정도로 급감했다”며 “일요일에도 한산해 일하기에 바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브랜드 제과점 한 곳이 최근 문을 닫았고, 팥죽을 팔던 한 점포도 나간 지 오래됐는데 새 임차인이 안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평동 M공인의 대표는 “이곳은 판교 테크노밸리 직원과 인근 주민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현대백화점이 무료 쿠폰과 상품권을 나눠주고 할인행사도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탓에 그쪽으로 다 몰려갔다”며 “건물의 분양가가 높다 보니 임대료도 높게 책정돼 전용면적 33㎡ 안팎의 소형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아브뉴프랑의 전용면적 33㎡ 1층 점포 임대료는 월세가 400만~500만원, 보증금이 8000만~9000만원 정도다.

아브뉴프랑 1층의 한 점포에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음식점과 카페, 각종 술집이 주로 들어선 삼평동 중심상업지구엔 최근 치킨집이 늘고 있다. 백화점과 겹치지 않는 업종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영향이다. 백화점과 업종이 겹치는 점포는 일부 건물주들이 재계약 시 월 임대료를 10~20만원 정도 낮춰주고 있다. 중심상업지구 대로변 전용면적 33㎡의 1층 점포는 월세가 400만~500만원, 보증금은 5000만~1억원 정도다.

중심상업지구 인근 80여 개 상가들이 소속된 판교상가연합회의 이민우 회장은 “현대백화점이 들어오고 나서 백화점의 영향을 덜 받는 치킨집이 이 일대에만 7~8곳이 새로 생겼다”며 “대기업의 영향으로 상권 성숙은커녕 다양화마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중심상업지구 후면 상권. 층 전체가 비어 있는 건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