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서울 여의도를 하나둘씩 등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금융위원회는 여의도를 ‘금융중심지'로 지정했습니다. 이어 서울시는 여의도를 동북아 금융허브(hub)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증권사들이 잇따라 여의도를 떠나고 있어 한국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를 꿈꾸던 여의도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신증권은 지난 2013년 12월 신영증권에 여의도 건물을 매각했습니다. 내년 하반기 명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대신증권은 현재 명동 중앙극장 터에 24층 규모의 본사 사옥을 짓고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앞에 세워져 있는 황소 동상. 내년 대신증권 본사 이전과 함께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명동 사옥에는 대신금융그룹 계열사들이 다시 하나로 모이게 됩니다. 대신 저축은행, 대신F&I, 자산운용사 등이 하나의 사옥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각 계열사가 분리돼 있어 발생하던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겠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1985년 명동 사옥을 매각하고 여의도로 이동 한지 30여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셈입니다.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증권사들의 ‘탈 여의도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옛 동양증권(현재 유안타증권)은 지난 2004년 여의도 본사 사옥을 매각하고 을지로로 짐을 옮겼습니다. 2000년대 초 사옥을 매각한 후 임대를 통해 여의도에서 본사를 운영했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을지로로 향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2011년 기존 미래에셋생명이 소유하고 있던 여의도 본사를 떠나 을지로 센터원빌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자산운용사들도 여의도를 떠났습니다. 삼성자산운용은 같은 해 여의도에서 태평로로 이사했습니다. 지난 2013년에는 메리츠자산운용이 북촌의 한옥마을로 떠났습니다.

증권사들이 줄줄이 여의도를 떠나면서 주변 상인들의 걱정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대신증권 앞 상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경기가 어려워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데 상가를 주로 찾는 증권사 직원들이 없어지면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1층 로비 주식시세 전광판을 개인투자자들이 보고 있다.

여의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주식시세 전광판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식에 슬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신증권 여의도 본사에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세 전광판을 보기 위해 방문하고 있습니다. 대신증권의 이전으로 이 전광판은 사라질 예정입니다. 한 개인투자자(67세)는 “마실 나오듯이 이곳에 나와 전광판을 보고 다른 투자자들과 정보도 교환했었는데 없어질 예정이라니 친구를 잃은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의도 부동산 업계 관계자도 비어가는 건물들이 늘어나면서 걱정이 늘고 있습니다. 여의도의 한 공인중개사는 “증권사들이 이전하고 남은 건물들은 공실률이 높은 경우가 많다”며 “노후화된 건물들도 많은 상태라 공실 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여의도를 국제 금융지구로 만들기 위해 국내외 금융 기관들을 불러 모았지만 전산망이 발달하면서 굳이 한국거래소나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등과 붙어있기 위해 여의도에 모여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며 “대신증권 직원들은 낙후된 시설에서 근무하다가 새로운 건물로 들어가 근무환경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금융 관련 시스템이 전산화되면서 금융 기관들과 증권사, 자산운용사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을 필요성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증권 등의 예탁도 실물에서 전자로 바뀌면서 여의도의 장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가가 비싼 여의도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증권 앞에서 위풍당당한 자태로 투자자들을 바라보던 황소 동상도 내년이면 여의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명동으로 걸어가는 황소의 뒷모습이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