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채권단 이의 제기 가능성에 현실화 어려워" 보고서 10월말 제출
기업측 반발까지 겹쳐…현재는 정부도 "추진 어렵다"

지난 10일 금융위원회는 긴급 브리핑을 했다. 브리핑 목적은 ‘언론보도 자제요청’이었다. 금융위가 보도 자제 요청까지 하게 된 이유는 한 언론 매체의 ‘한진해운·현대상선 강제 합병 추진’ 보도 때문이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 주도로 이뤄지고 있으며 정부가 강제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단순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이 언론에 비중있게 보도되면 그 여파가 너무 크다”면서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일부 금융위 관계자는 “양사 합병을 검토한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비즈 취재 결과 이는 사실과 달랐다. 금융위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부분은 '강제로 추진한다'는 문구이지, 두 회사가 합병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 다만 현재는 두 회사 합병에 따른 실익이 적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두 회사 모두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어 합병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 9월까지 두 회사 합병안 논의…산업은행은 보고서 작성해 당국에 제출

금융위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합병 방안은 2010년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두 회사에 의사를 타진할 때마다 반발이 심해 실제로 추진된 적은 없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이명순 금융위 구조개선정책관은 “한진, 현대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서 아이디어는 그간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면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는 모두 나왔으며 합병안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복수의 취재원에 따르면 금융위가 산업 구조조정을 공식화한 지난 9월 두 회사 합병은 정부부처 회의에서 논의됐다. 9월 서별관회의에서 거론됐다는 설도 있다. 서별관회의는 경제부총리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리는 경제금융 상황 점검회의다. 그 만큼 정부는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정부 부처 고위 관계자는 “두 회사 합병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해운업의 공급 과잉이 너무 심하다”면서 “해외 선사들처럼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고민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두 회사 합병을 논의한 이유는 두 회사 모두 컨테이너선 중심의 영업구조인데다 항로도 미주 및 구주 항로에 편중돼 있어 두 회사가 제살깎아 먹기 경쟁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매출 비중은 각각 92%와 82%에 이르며, 미주 및 구주항로 비중은 두 회사 모두 75%선이다.

정부는 9월쯤 한진해운에 현대상선 합병 의사를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은 어느 정도 관심을 표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이때 한진해운에 제공할 수 있는 금융 혜택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비즈가 단독 입수한 산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현대상선 인수 의향자에 제공할 혜택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최소 2017년까지 회사채 차환 지원’, ‘인수금융 제공’, ‘펀드 조성을 통한 대형선박 구매 지원’, ‘세제 혜택’ 등이 거론됐다. 산업은행은 이 보고서를 지난달 작성해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에 전달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한진해운에 요청했으면 한진도 응했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해운업계 의견과 유사하게 두 회사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산업은행은 합병이 어려운 이유를 크게 3가지로 꼽았다.

먼저 33개 채권단의 동의를 얻기가 어렵고, 해운업 동맹체의 동의를 얻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4년 한진해운이 전용선을 매각할 때 선박금융 채권단 34곳의 동의를 얻는데 6개월이 걸렸다는 설명이 곁들여있다.

또 해외 채권단과 공모채 보유자들이 이의 신청을 하거나 조기상환을 요구할 가능성도 우려 요인으로 들었다. 현대상선의 선박금융 해외 채무 규모는 5억2000만달러이며 한진해운의 경우 13억7000만달러다. 공모 회사채 발행잔액도 현대상선은 9200억원, 한진해운은 7000억원가량이다. 이들 투자자들이 모두 조기상환을 청구할 경우 합병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산업은행은 기업 오너가 반발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수립한 자구 계획을 진행시키는 와중에 사적 재산권에 개입했다간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이달 중순 해운업 구조조정 회의 열려…당장 구체적 방안 나오긴 힘들듯

범정부 구조조정협의체의 컨트롤타워인 금융위도 산업은행의 보고서를 전달받은 이후 합병 계획을 중단시켰다. 두 회사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는 상황에서 몰아붙이기 식으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강제적인 합병은 절대 없다”면서 “두 회사가 원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현재는 추진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에 비해 두 회사 합병에 소극적이었던 해양수산부는 “두개 선사 체제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우리보다 내수시장이 작은 대만도 정부 지원 아래 3개 선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하나로 합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달 중순 열리는 범정부 구조조정협의체에서 해운업 정상화와 관련해 어떤 논의가 나올지 주목된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추가 자구계획안을 내놓기 전에 이 회의가 열릴 것으로 보여 구체적인 방안이 도출될 가능성은 낮다. 현재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근본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의 자구계획을 가져와야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범정부 구조조정 협의체는 금융위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의 차관 및 부기관장급이 참여한다. 이번 해운업 구조조정의 경우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도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