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파수비오(Pasubio)가 만든 내장(內裝) 가죽, 오스트리아 복스마크(Boxmark)가 제공한 좌석 바늘땀 기술, 세계적인 항공기좌석업체인 프랑스 소제르마(Sogerma)가 제조한 좌석, 서울대 의대가 개발한 운전석 제어시스템….

현대자동차가 10일 경기 화성의 현대·기아차기술연구소(남양연구소)에서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모델인 EQ900(신형 에쿠스)을 선보였다. EQ900은 각 분야에 걸쳐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집약했다. 1200명의 전담연구원이 4년간 각 분야의 세계 최고 기업을 찾아가 제휴하거나 기술을 배워 EQ900에 적용했다. 작년 4월엔 "항공기 1등석 같은 좌석을 만들겠다"며 전담팀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세계항공박람회(Aircraft Interior EXPO)에 다녀왔다.

현대차가 10일 공개한 ‘제네시스 EQ900’의 그래픽 이미지. ‘EQ900’은 이달 초 현대차가 출범시킨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모델로 안전성을 높이고 자율주행시스템을 적용한 게 특징이다. 최고급 가죽 시트를 채택하고 실내공간도 넓혔다.

이날 사진 촬영은 물론 스마트폰 반입까지 금지하는 극도의 보안 속에 첫 공개된 EQ900의 앞 모습은 제네시스, 뒷 모습은 에쿠스에 가까웠다. 기존 에쿠스보다 길이는 4㎝ 늘어나고 실내 공간은 10㎝ 늘어났으나 높이는 그대로 유지해 외관이 더 날렵해 보였다. 엔진은 기존 모델과 같지만 3.3 V6터보 엔진이 추가됐다. 현대차는 EQ 900을 다음 달 9일 국내 시장에 출시하고 순차적으로 세계 시장에 내놓는다. 양웅철 부회장은 "EQ900은 글로벌 고급 대형차 시장에서 벤츠S 시리즈, BMW 7시리즈, 도요타의 렉서스 등과 겨룬다"며 "기존 고급차가 차량으로 사회적 지위를 자랑하는 콘셉트라면, 우리는 철저히 편의성 등 고객 가치를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비행기 1등석과 경쟁한다

EQ 900의 뒷좌석에 앉으면 팔걸이 왼쪽으로 'rest(휴식)' 버튼이 보인다. 이 버튼을 누르면 앞좌석은 자동으로 26㎝ 앞으로 밀리고, 뒷 좌석은 10㎝ 정도 당겨지면서 등받이가 36도까지 뒤로 눕는다. 리무진 모델은 뒷좌석이 42도까지 젖혀진다. 우창완 내장설계실장(이사)은 "벤츠 S시리즈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지금까지 나온 글로벌 고급차 뒷좌석 중 가장 많이 젖혀진다"고 말했다.

자동 세팅이 싫다면 수동으로 조절해도 된다. 이 경우 발 받침대, 어깨 경사도, 머리·목 부위의 각도와 전후 이동 등 18개 항목의 조절이 가능하다. 운전석에는 서울대 의대와 제휴해 운전자가 본인의 신장 및 몸무게 등을 입력하면 현재 자세 및 허리 건강 정보를 분석해 추천 시트 위치를 자동으로 설정해주는 스마트 자세 제어 시스템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고성능차 총괄 부사장은 "키가 193㎝인 나도 뒷좌석에서 충분히 안락함을 느낄 정도"라며 "사람으로 치면 '온화한 군주(gentle sovereign)'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 10여 차례 개발팀 찾아

차체는 무게가 10% 이상 가벼우면서도 강도는 2배 이상 높은 초고장력 강판(AHSS) 사용 비중을 기존 모델(16%)보다 3.2배 높은 52%로 확대했다. 그만큼 안전성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또 대형차이지만 색상의 선택폭을 다양화했다. 외장 컬러 8종, 내장 컬러 5종 등을 통해 소비자 취향에 따라 총 72개의 색조합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제로백(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 등 구체적인 동력 성능은 이날 공개하지 않았다. EQ 900 개발에는 정몽구 회장의 남다른 관심이 컸다. 그는 작년에만 남양연구소를 불시에 10여 차례 찾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품질 경영을 강조해온 정 회장의 집념이 담긴 차"라고 말했다.

고속도로 자율 주행… 추돌사고 방지 시스템까지

EQ900에는 국내 최초로 고속도로에서 운전 피로를 줄여주는 고속도로 주행지원(HDA) 시스템이 장착됐다. 이는 완전 자율주행차의 전초 단계로, 졸음운전이나 전방(前方) 주시 태만과 같은 운전자의 부주의에도 정해진 차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설정된 속도로 안전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내비게이션으로부터 받은 최고제한속도 정보를 바탕으로 구간별 자동 속도 조절도 가능하다.

또 기존의 후측방 경보 시스템 성능을 향상시킨 후측방 추돌회피 지원 시스템도 국산차 최초로 적용했다. 황정렬 중대형 PM(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센터장(전무)은 “세계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국내 도로 환경에서도 추돌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EQ900은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후 첫 차여서 제네시스의 완전한 정체성을 담았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인 루크 동커볼케 전 벤틀리 수석디자이너 등이 합류한 이후에야 제네시스의 정체성이 더 확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시스 EQ900은 3.8 GDi, 3.3 터보 GDi, 5.0 Gdi, 5.0 Gdi(리무진) 등 4가지 모델로 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