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R. 라이언 지음|이광수 옮김|그린비|448쪽|2만3000원

사진이란 무엇인가. 있는 사실의 기록이라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수단을 통한 예술이라는 사람도 있다. 다른 한편 그것은 지배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영국에서 그랬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대영제국 시대의 일이었다.

사진은 제국주의의 지배력을 강화했고 식민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제국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훌륭한 수단이자 도구로 사용됐다. 이 책에 실린 숱한 사진들은 그런 과거를 웅변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기(1837~1901)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대영제국이 강성했던 시기 ‘사진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제국주의 연구와 지리학 전문가인 저자는 당시 권력자들이 사진을 이용해 제국과 식민지에 대한 전형적인 관념과 선입견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1858년부터 1864년,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아프리카 잠베지강(江) 탐험을 찍은 사진은 그 첫 사례다.

토머스 존스 바커, ‘영국의 위대함의 비밀(1861)’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당대의 사진 자료와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의 증거, 군사작전 등 정복활동의 기록물, 식민지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사진들이다.

로버트 힐스와 존 사운더스 ‘브로그모어 집무실의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 여왕이 대영제국에서 차지하는 우상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다. 우편 수발함 앞에서 찍은 사진 속 빅토리아 여왕은 검은 상복을 입은 차분한 모습으로 꼿꼿하게 앉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여왕 옆에는 식민지 인도를 상징하는 인도인 비서 셰이크 칫다가 가만히 서서 명령을 기다린다.

더 그래픽 ‘제국 연방 세계 지도’

대영제국은 영국을 세계의 중심에 둔 지도를 제작했다. 지도의 가장자리는 대영제국과 식민지의 동식물군과 인종 유형을 상징하는 그림들로 장식됐다. 영국의 시각으로 지구의 지리를 재현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됐다.

왕립 공병대, 발루치 여단(1868)

영국군은 사진이 기록 작업뿐만 아니라 홍보에도 유용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양한 군사 활동을 촬영했다. 사진을 찍기 전 대상의 배치나 촬영 구도를 계산해, 영국군이 계획적이고 확실하게 군사작전을 시행한다는 이미지를 심으려 했다. 질서정연하고 위엄 있는 이미지를 연출한 왕립 공병대의 사진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W. W. 후퍼와 V. S. G. 웨스턴의 ‘호랑이 사냥(1870)’ 중 ‘잡힌놈’

사냥하는 장면과 포획물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유럽 예술의 일부였다. ‘인간이 주도해 자연 세계를 길들이고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후퍼와 웨스턴의 사진 연작 ‘호랑이 사냥’도 당시 유행했던 놀이 회화의 영향을 일부 받았다.

딘 다얄이 출간한 ‘니잠령을 방문한 인도총독 커즌경 각하의 기념사진’에 실린 ‘총을 쏜 직후의 각하 내외’

상업 사진회사인 딘 다얄(Din Dayal and Sons)이 인도총독의 하이드라바드 니잠 방문을 기념해 촬영한 호랑이 사냥 연작 중 한 장면이다. 영국의 통치권이 확장되면서 호랑이 사냥(시카르)도 대형화, 조직화됐다. 그 덕분에 호랑이 사냥은 인도 토착군주들이 대영제국에서 파견된 고위층을 접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천시 휴 스티건드 ‘사냥에 대한 개인 기억으로서의 사진들’, 왕립지리학회 아카이브

자연사학자인 천시 휴 스티건드 소령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수집했다. 작은 담배통, 사자 발톱, 총알, 상아 한 쌍을 잡고 선 아프리카 하인의 사진 등 그의 소지품을 찍은 사진이다. 대형 동물 사냥꾼이던 스티건드는 사진을 통해 탐험의 성과와 자연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뽐냈다.

'세타이트와 로얀으로부터, 1876년 동북부 아프리카'

박제된 사자 아홉 마리의 머리를 이젤 위에 배치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식민지의 동물 사냥은 국가 차원에서도 장려됐다. 자연사 연구에 필요한 견본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프리카 원정을 다녀온 가이 도내이는 사냥의 전리품을 찍은 사진을 다수 남겼다. 1850년대 이후 자연사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박제품이 유행했는데, 사냥한 야생동물을 살아있는 듯한 모습과 자세로 박제했다.

핼포드 매킨더가 찍은 '코뿔소를 탄 하우스버그(1899)'

등반 사진가인 캠벨 하우스버그가 사냥한 코뿔소 위에 걸터 앉아 찍은 사진이다. 1850년대 후반부터 영국의 탐험가, 군인, 행정가, 전문사냥꾼들은 사냥 업적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휴대했다.

아서 레드클리프 더그모어 ‘야생 아프리카에서 카메라와 함께하는 모험(19010)’ 중 ‘저자와 그의 카메라’.

일부 사진가들은 사냥하듯 카메라를 들고 동물을 따라다니고, 총을 작동하듯 카메라를 다뤘다. ‘카메라 사냥꾼’이다. 카메라 사냥꾼 중 한 명인 더그모어는 영국령 아프리카에 몇 차례 원정을 떠나 보호장비 대신 사진장비를 이고 야생동물 촬영에 나섰다.

작자 미상 ‘사진으로 보는 블랜타이어 경관(1901~1905년경)’

식민지를 촬영한 사진들은 당시 영국인들의 선입견을 반영했고 재생산했다. ‘원주민 사진 찍기’는 인기 있는 촬영 주제 중 하나였다. 원주민의 거주지나 일상적인 풍경, 상대적으로 원시적인 문화 등을 담았다.

존스 H. 램프리 ‘중국남자(1870)’

인종별 인체의 차이와 식민지인의 특징을 연구하는 작업도 사진으로 이뤄졌다. 런던민족협회 사무차장 겸 왕립지리학회 도서관장인 존스 램프리는 민족지에 알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가로세로 2인치(약 5센티미터)짜리 눈금자로 된 측정 화면을 고안했다. 눈금자를 배경으로 벌거벗긴 인간의 앞모습과 옆모습을 촬영했다.

모리스 비달 포트먼이 촬영한 '버코, 동일한 여성의 측면 프로필 사진(1893)’

‘원주민 사진 찍기’는 원주민이 다 죽어 사라지기 전에 이들의 특징을 기록해 두려는 의도에서 촉진됐다. 포트먼은 인체 측정 사진을 ‘외부 특징의 관찰’이라는 두 권짜리 책으로 엮었다. 사진과 함께 몸무게, 피부색, 맥박 수까지 기록했다.

해리 H. 존스턴 ‘도겟과 무암바(1900년)’

지리학자 겸 박물가인 해리 해밀턴 존스턴은 1890년대 영국령 중앙아프리카의 행정지사로 근무하는 동안 사진을 ‘식민지 팽창 수단’으로 사용했다. 도덕적, 문화적으로 열등한 흑인종에 대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진을 제시했다. 존스턴이 촬영한 이 사진도 대영제국 당시 확립된 인체 측정 사진의 규정에 부합한다.

존 톰슨의 ‘사진으로 보는 중국과 중국인(1873~1874)’에 실린 사진 ‘차꼬’

사진가 존 톰슨도 사진으로 인종을 연구했다. 톰슨은 1873년부터 1874년까지 ‘사진으로 보는 중국과 중국인’이라는 대작업을 진행했다. 민족, 나이, 직업별로 사진을 찍어 중국인을 구분하는 유형도를 만들었다. 중국인은 문명화되지 않은 관습이란 차꼬를 차고, 가난과 무지에 짓눌려 있다는 식민주의자들의 생각이 사진에 은유적으로 표현됐다.

핼포드 J. 매킨더, '인도 여덟 개의 강의(1910)'에 수록된 '총검술을 하는 구르카 소총수들'

대영제국 시대의 사진은 영국의 지배 덕에 식민지가 개화됐다는 이미지를 제공했다. 식민성시각교육위원회는 ‘제국의 통합과 신민의식을 강화하는 교육적 수단’으로 식민지 곳곳의 다양한 삶을 사진으로 촬영해 보여주는 강의를 기획했다. 지리학 전문가였던 핼포드 매킨더는 식민지에 대한 강의를 기획하고, 사진 촬영과 감독도 맡았다.

잠베지강의 빅토리아 폭포 다리 아래의 성바오로 성당. 프레드릭 코트니 셀루스 랜턴-슬라이드 콜렉션

유명한 사냥꾼이자 동물학자, 제국 설계자인 프레드릭 코트니 셀루스가 1913년 러그비학교 자연사협회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발표하기 위해 사용한 자료 사진 중 하나.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붙인 잠베지강 빅토리아 폭포 다리 아래로 성바오로 성당이 보인다.

H.O.아널드 포스터가 편찬하고 서문을 쓴 '여왕의 제국(1902)'에 수록된 '동아프리카에서의 조약 체결’

사진을 선전도구로 본 대영제국 정부는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동아프리카에서의 조약 체결’의 배경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다. 하지만 탐험가 어니스트 게지가 찍은 원본 사진 ‘키쿠유에서의 조약 체결’의 배경은 나무들이었고, 수정본보다 덜 정돈된 모습이었다.

앨리스 해리스가 촬영한 '살해당한 친척의 손을 들고 있는 왈라 은종고 디스트릭트의 원주민, 백인은 남편인 해리스와 스탠나드(1904)'

여성 사진가들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앨리스 해리스나 메리 킹슬리 등은 선교 사역이나 인류학 연구를 위해 식민지를 찾았고,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시각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가인 앨리스 해리스와 존 해리스 부부는 콩고의 잔혹 행위나 노예제에 반대하는 운동을 활발히 진행했고,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