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모방하다’ ‘흉내 내다’라는 고대 그리스 단어다. 하지만 ‘미메시스’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적 행위로 더 유명하다. 특히 플라톤의 해석은 인상적이다.

폴리테이아(The Republic)에서 플라톤은 질문한다. 우리는 어떻게 다양한 침대들을 모두 ‘침대’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물체와 아이디어는 ‘이데아’ 세상에 있는 완벽한 존재들의 그림자일 뿐이다.

모든 침대들은 어차피 이데아 세상에 존재하는 완벽한 침대의 투사적 존재이기에, 그들의 동일함을 인식할 수 있다. 이데아 세상에 이미 존재하기에 우리는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한 침대를 만들어내는 목수는 완벽한 침대를 모방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모방된 침대를 또다시 그림으로 그리고 시로 표현하는 예술가는 모방의 모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진실은 오리지널에 있고, 모방은 왜곡이라면, 모방을 모방하는 예술은 진실을 두 번 왜곡한다는 말이다.

예술은 반복된 왜곡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예술의 역사다. 그림, 조각, 건축, 시, 소설을 통해 우리는 더 뛰어난 표현을 찾으려 노력한다. 독일 출신 문헌학자이자 비평가였던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그의 대표작 에서 서양 문학이 시도한 문학적 미메시스를 크게 두 가지 전통을 통해 해석한다.

우선 호메로스의 다. 20년동안 떠돌아다니다 거지 모습으로 고향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 다리에 남아있는 흉터를 발견한 유모 에우리클레아(Euryclea)는 그 거지가 바로 자신이 키웠던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메로스는 질문과 궁금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에우리클레아는 어떻게 오디세우스의 흉터를 보게 되었는지, 수 십 년 전 어린 오디세우스는 어떤 사고를 통해 흉터를 가지게 되었는지, 더 먼 과거에 에우리클레아는 무슨 이유로 이타카 왕가의 하녀가 되었는지, 호메로스는 우리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

호메로스에게 미메시스란 과거, 현재, 미래가 지금 이순간 벌어지고 있다는 착시를 심어주는 트릭이다. 호메로스의 미메시스는 언제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우어바흐는 현실이 아닌 ‘진실’을 보여주는 미메시스 역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구약의 미메시스다. 창세기에 소개되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기억해보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셨는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는지, 모리아 산은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하나님은 이삭의 희생을 명령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기에, 우리가 알 수 있는 나머지 모두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호메로스는 수 많은 디테일을 통해 존재하는 사실 만을 표현하지만, 구약에서의 미메시스는 깊은 해석을 통해 진실을 느끼게 한다. 현실과 진실의 차이.

독일 문헌학 최고의 대가들에게 교육받고, 독일 최고의 문학 비평가로 활동하던 아우어바흐. 하지만 유태인이었던 그는 터키로 망명해야 했다. 자신의 문화적 고향인 독일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스탄불에서 아우어바흐는 진실과 현실을 보여주는 걸작 를 1946년에 완성한다. 문학과 책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미메시스를 꼭 권하고 싶다.

에리히 아우어바흐 (Erich Auerbach)
, 민음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