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1997년 '이태원 살인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동갑내기 친구가 18년 만에 법정에서 재회했다.
아서 존 패터슨(36)은 하늘색 수의(囚衣)를 입은 피고인, 에드워드 리(36)는 깔끔한 검정색 양복을 입은 증인이다. 18년 전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에드워드 리가 살인범으로, 패터슨이 목격자로 법정에 섰다. 이번에는 정반대 상황이다.
둘은 서로 자신이 진범이 아니라고 진술했다.
◆ 검찰, "리가 부추겼고, 패터슨이 찔렀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는 두 차례의 준비기일 끝에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된 존 패터슨에 대한 첫 정식 재판을 열었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3세)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리 혹은 패터슨 아니면 리와 패터슨 공범 세 경우 중 하나다. 검찰은 리와 패터슨을 공범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리는 1998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나 다시 재판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증인 신문 전 검찰은 패터슨에 대한 공소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은 리가 화장실 입구에서 패터슨에 칼을 건네며 '칼로 저 사람을 찌를 수 있겠느냐'고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리가 세면대 앞에서 손 씻는 척하며 지켜보는 사이 패터슨이 화장실 내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후 조씨의 양쪽 목과 가슴을 9차례 찔러 살해했다고 검찰 측은 주장했다.
리는 당시 상황을 묻는 검찰의 질문에 "당시 나는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며 "화장실 거울을 통해 패터슨이 대변기 칸을 살피고 갑자기 조씨를 찌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가 오른쪽 주먹으로 패터슨을 치려 했지만, 패터슨은 계속해 피해자를 찔렀다"며 "나는 조씨가 자신의 목을 붙잡고 넘어지려 하는 순간 화장실을 빠져나왔다"고 덧붙였다.
패터슨 측 변호사는 "리가 멋진 것을 보여주겠다고 해 패터슨은 마약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 리를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며 "리는 대변기 칸을 열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후 마약에 취한 상태로 조씨를 찔렀다"고 주장했다.
◆ 리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추기지 않았다"
피고인과 증인이 재회한 것은 이날 오후 2시. 패터슨이 먼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뒤이어 리가 입장했다. 리가 입장하자 패터슨과 리는 몇초간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리는 얼마 안 돼 시선을 옮겼지만, 패터슨은 리가 자리에 착석할때까지도 강하게 쳐다봤다.
검찰은 범행 현장 사진을 제시하며 신문을 진행했다. 수사기록에 리가 패터슨에 '아무나 찔러봐라. 누군가 쑤셔버리자'고 말했다고 기록된 것을 포함해 대부분의 질문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는 "나는 햄버거 가게에서 멋진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리는 패터슨에게 사람을 찔러보라고 범행을 부추겼는지, 범행에 쓰인 칼에 손댄 적이 있는지를 묻는 말도 모두 부인했다.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검찰 질문에는 "당시 패터슨은 친구였고 충격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답했다. 리는 이날 증언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검찰의 지적에 직접 자리에 일어나서 목을 붙잡고 무릎을 굽히면서 당시 조씨의 상황을 재연하기도 했다.
리는 1997년 사건 직후 검찰 조사나 경찰 조사를 받을 때 통역이 전혀 없었고, 잠을 자지 못하면서 조사 받았다고 강조했다. 과거 사건 기록에서 자신이 한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리는 패터슨 변호사 측 신문이 시작되자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변호사 측이 리의 한국어 능력을 알아내고자 부모님의 배경, 리의 학창시절 이야기 등을 하자 "개인적인 이야기는 보도되면 나와 가족들이 향후 영향을 받아 답하고 싶지 않다"며 답을 피했다. 방청석에 있던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도 "Come on(정말)"이라고 큰소리를 내며 질문에 불편함을 표했다.
이날 피해자의 어머니 이복수(73)씨는 이날 방청석 세번째 줄에 앉아 재판을 지켜봤다. 그는 검찰이 공소사실을 이야기할 때 눈을 내리깔고 다른 곳을 응시했다. 검찰이 피가 보이는 현장 사진을 제시했을 때는 잠시 법정 밖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는 "앉아서 들어보니 서로 미루고 안 죽였다고 하는 게 18년 전 재판과 똑같다"며 "우리 아들을 죽게 한 사람에 최고형, 엄벌에 처하게 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