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 생가가 위치한 충청도 천안시 목천읍, 옛 목천현 지역을 답사하였다. 목천은 1914년부터 천안에 포함되었다. 옛 관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옛 지명이 붙은 군청, 읍사무소, 면사무소, 초등학교를 찾아 가는 것이 한 방법이다.
목천초등학교를 먼저 찾아 갔다. 2013년이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교문 안으로 들어서니 대각선 방향으로 큰 느티나무들이 보인다. 이럴 때 뭔가 찾겠다는 느낌이 온다. 느티나무 방향으로 가는데 목천기미독립만세운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아무데나 이런 기념비를 세우겠는가.
느티나무들은 300년이 넘었고 보호수 안내판 옆에 검은 돌판이 보인다. '목천현관아지(木川縣官衙址)'라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 목천현의 관아들이 목천초등학교에 있었던 것이다.
설명문을 살펴보았다. 목천현은 1413년(태종 13)부터 독립된 군현이었기에 이곳에 관아가 있었다. 1908년에 이곳에 의숙(義塾)이 생겼고 1908년에 보명학교(普明學校)로 바뀌었다. 1913년 4월 1일 목천공립보통학교가 이곳에 들어섰다. 1914년에 행정구역이 통폐합 되면서 목천은 천안에 포함된다. 이때 관아들이 사라진 것이다.
옛 관아의 흔적이 현재 관아에 남아있을까 싶어 목천읍사무소로 갔다. 목천읍사무소 안에는 목천의 옛 이름을 따서 '목주정(木州亭)'이라 이름붙인 정자가 보인다. 2004년에 세운 것이다. 읍사무소 현관 왼쪽에 '마을명 유래'를 정리해 놓은 것이 이채로웠다.
읍사무소 입구 양쪽으로는 비석들이 보인다. 관찰사, 암행어사, 현감들의 선정비와 영세불망비이다. 비석들은 2단으로 된 시멘트 계단 위에 서 있다. 다른 곳에 있던 비석들을 이곳에 옮겨 놓은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옛 관아 건물은 찾지 못했다. 옛지도에 등장하는 건물 하나는 보고 가야 했다. 그래서 목천 향교를 찾았다. 교촌 2리 경로당 건물 왼쪽에서 향교 입구의 홍살문을 발견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 이곳으로 옮겼다. 길가에 명륜당이 보인다. 명륜당 옆 문을 통해 들어가니 계단 위로 작은 문이 보인다. 대성전과 명륜당이 위계 구조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천 향교에서 나와 천안시 관광안내도를 살펴보았다. 유명한 인물들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많이 보인다. 이 작은 고을 목천현에서 이렇게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단 말인가. 이동녕 선생 생가, 박문수어사묘, 김시민장군 유허지, 홍대용 선생 생가와 묘, 조병옥박사 생가, 유관순 열사 생가가 목천현에 있다. 독립기념관도 목천에 있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로 향했다. 병천면에 있다. 아우내를 한자로 바꾸면 병천(竝川)이 된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생이다. 1919년 4월 1일에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20년에 순국하였다. 옛 집은 1991년에 정비 복원한 것이다. 집 안에 들어가면 독립운동 당시의 태극기의 모습과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생가 왼쪽 매봉교회는 유관순 열사가 다니던 교회로 알려져 있다. 건물 외관에 '유관순 기념 기독교 대한 감리회 매봉교회'라고 적혀 있다.
유관순 열사 생가는 면사무소에서 약간 떨어진 동네에 있다. 아우내 장터는 병천면사무소가 있는 동네이다. 장터 엿장수에게 물어보니 1일과 6일이 장날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천안호두과자 간판도 몇 개 보이지만 순대 간판은 정말 많았다. 아우내 장터 순대가 병천 순대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작고 유명한 순대집은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집에서 순대를 먹고 있었다. 관광버스 몇 대가 주차장에 들어서더니 관광객들이 들이닥쳤다. 독립기념관 구경을 갔다가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