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소각 결정에 주식시장이 반색했다. 지지부진한 장세에 모처럼 큰 호재가 나왔다는 반응이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여러 대기업이 계속해서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졌다.

◆ 삼성전자 결정에 자사주 매입 규모 두 배 늘듯

삼성전자는 29일 100억달러(11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1년 안에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삼성그룹이 연말을 앞두고 주주환원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은 많았지만, 이번 결정은 여러모로 주식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30일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우는 각각 3.5%, 10.8% 올랐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이번 주주환원정책은 일단 규모 자체가 크다.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10년 2조2000억원이었던 유가증권시장 자사주 매입 규모는 2011년 2조7000억원, 2012년 1조8000억원, 2013년 1조6000억원으로 정체 구간을 지난 뒤, 2014년 3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 전까지 4조3000억원을 기록해 이미 작년 수준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1차 자사주 매입 규모가 4조2000억원 정도로 예상되는 것을 고려하면 올해 유가증권시장 자사주 매입 규모는 8조5000억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의 두배가 넘는 수준이다.

유가증권시장 자사주 매입 규모 추이.

자사주 매입은 대표적인 주주환원정책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발행주식수가 줄기 때문에 주당 순이익과 주당 미래현금흐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 결정을 환영하는 것이다.

◆ 가뭄에 콩 나던 자사주 소각...봇물 터지나

삼성전자의 이번 발표에서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매입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겠다고 한 결정이다. 자사주 소각은 매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만 하면 나중에 다시 주식시장에 주식이 풀릴 수 있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자체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없다.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에 놀라움을 표시한 것은 자사주 소각이 경영권 승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 물량을 소각한 이후에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면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입장에서는 불리해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올해 엘리엇 사태 등을 겪으면서 주주들의 불만에 직면했는데, 이번 결정으로 주주들의 지지를 상당부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식시장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국내 기업들은 주주환원정책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뛰어넘는 자사주 소각 결정까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최근 몇 년간 주식시장에서 규모가 큰 자사주 소각은 2012년의 두산그룹(약 7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 공시 건수.

증시전문가들은 앞으로 대기업의 자사주 소각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과거처럼 고성장을 구가하기 힘들어진 만큼, 앞으로는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정부 정책도 주주환원정책에 힘 실어줘

앞으로 3년간 시행되는 기업소득환류세제도 국내 기업의 자사주 소각 결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당해 기업소득의 80% 가운데 배당, 투자, 임금상승분을 제외한 금액에 10%의 세율을 부과하는 세금이다. 2017년까지 3년간 시행되는데, 대기업이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배당에 나서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자사주를 취득해 1개월 내로 소각하면 배당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배당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많다"며 "다른 기업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결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시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 투자를 늘리라고 조언한다.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 등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주식자산 승계율이 낮은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나 잉여현금흐름이 많은 기업들이 앞으로 자사주 매입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했다.

주식자산 승계율은 경영권을 가진 그룹 총수 일가의 전체 주식 자산 가운데 자녀가 갖고 있는 주식자산 비율을 뜻한다. 승계율이 낮을수록 앞으로 경영권 승계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는 의미다. 30대그룹 가운데 주식자산 승계율이 한자릿수인 곳은 동국제강(8.3%), 현대(5.4%), CJ(2.3%), 부영(2.3%), SK(0%), 현대중공업(0%)이다. 내년 잉여현금흐름 전망치가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 한국전력,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기아차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