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야구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과학자들은 야구만큼 인간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운동이 없다고 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는 힘이 우리의 두 배나 되고 정상급 육상선수보다 30% 이상 더 높이 뛸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가 시속 160km의 공을 뿌릴 때 침팬지는 겨우 시속 30km 공밖에 던지지 못한다. 열두 살짜리 아이도 침팬지보다 세 배나 빠르게 던질 수 있다. 인간은 야구를 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인간의 몸에 각인된 야구 본능은 무엇일까.

침팬지를 이기게 한 야구

야구는 18세기 중반 잉글랜드에서 기원했다. 첫 공식 경기는 1846년 6월 19일 미국 뉴저지주 호보컨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야구의 진정한 기원을 200만년 전으로 본다. 이때부터 다른 영장류와 달리 물체를 빠르고 강하게 던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2013년 6월 2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에는 공을 던지는 투수의 사진이 실렸다. 미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날 인간이 야구를 잘할 수밖에 없게 된 진화의 증거를 제시했다. 연구진은 적외선 카메라로 대학 운동선수 20명이 야구공을 던지는 모습을 촬영했다. 투구력의 원천은 엄청난 어깨 회전 속도에 있었다. 선수들이 공을 던질 때 위팔뼈는 초당 25회전했다. 이는 인간의 신체 부위 중에서 가장 빠른 운동속도이다.

분석 결과 근육의 힘만으로는 그렇게 강하고 빠르게 공을 던질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어깨를 감싼 인대와 힘줄이 새총의 고무줄처럼 탄성에너지를 축적해 투구력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새총을 쏠 때는 고무줄을 뒤로 당긴다. 공을 던질 때도 어깨와 팔의 인대와 힘줄을 잡아당기는 동작이 필요하다. 인간은 어깨뼈가 낮고 위팔뼈가 몸통 축과 직각이라 던지기 전에 팔을 뒤로 더 많이 젖힐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리도 길어 회전력을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침팬지는 어깨뼈가 높아 나무에 매달리는 데는 좋지만 팔을 뒤로 젖히는 동작은 쉽지가 않다. 허리도 인간보다 훨씬 짧다. 인간은 팔꿈치를 구부렸다가 물체를 던지는 순간 펴 속도를 높이지만 침팬지는 미리 팔꿈치가 펴져 있어 투구 순간 속도를 높이지 못했다.

연구진은 오늘날 인간의 어깨 구조를 원시 인류의 화석과 비교했다. 그 결과 200만년 전 처음으로 직립보행을 한 호모 에렉투스가 딱 들어맞았다. 다윈은 "직립보행 때문에 손이 자유롭게 됐을 때 인간의 독특한 던지기 능력이 효과적인 사냥을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그의 예측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연구를 이끈 하버드대 닐 로치 박사는 "당시 인류는 먼 거리에서 돌이나 창을 던져 큰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며 "이렇게 얻은 고칼로리, 고지방 식품은 원시 인류의 뇌 용량과 몸집을 불렸고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영장류를 누른 인류의 성공은 야구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야구본능은 어떻게 진화했나

그립감은 300만 년 전 이미 터득

인간의 야구 본능이 출현한 시기를 더 오래전으로 끌어올린 연구 결과도 잇따른다. 투수는 손가락으로 야구공을 잡는 형태를 달리해 다양한 구질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야구공을 손가락으로 단단히 쥐는 동작이 필수적이다. 바로 그립(grip) 능력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영국 켄트대 연구진은 지난 1월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오늘날과 같은 그립 능력은 던지기 능력이 진화하기 이전인 300만년 전부터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침팬지와 달리 열쇠를 돌리고 망치를 강하게 쥐는 동작이 가능하다. 과학자들은 나무에 매달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도구를 만들고 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런 그립 능력이 발전했다고 본다.

켄트대 매튜 스키너 박사 연구진은 그립 능력이 언제 발전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손가락뼈에서 스펀지처럼 구멍이 있는 해면뼈를 조사했다. 이 뼈는 어떤 손동작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연구진은 침팬지에서부터 원시 인류 화석과 오늘날 인류까지 손가락 해면뼈를 조사했다. 현생 인류처럼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강하게 맞붙는 그립 동작을 많이 하면 해면뼈가 손가락 뼈 위아래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침팬지는 손가락뼈 전체에 고루 해면뼈가 분포한다. 지금까지 현생 인류와 같은 해면뼈 구조는 호모속 이후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연구에서 그보다 훨씬 오래된 300만~2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에서부터 나타났음이 확인됐다.

투구에 적합한 어깨뼈 구조의 진화 과정도 분석됐다. 미국 UCSF 연구진은 지난달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투구 동작에 적합한 어깨뼈 구조는 점진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390만~290만년 전)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195만~178만년 전), 호모 에르가스터(180만~130만년 전), 네안데르탈인(13만~3만년 전) 화석의 어깨뼈 구조를 비교 분석했다. 오늘날 인간은 모종삽처럼 생긴 어깨뼈와, 등쪽에 손잡이처럼 수평으로 뻗어있는 '어깨뼈가시' 구조가 있다. 침팬지의 어깨뼈가시는 머리쪽으로 들려 있다. 비교 결과 아파렌시스의 어깨는 인간보다 오늘날 아프리카 영장류에 가까웠고, 세디바는 영장류보다 인간과 더 비슷했다. 결국 인간은 300만년 전 그립 능력을 터득하고 200만년 전 전후로 어깨를 회전해 투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야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스포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