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매각 무산으로 자구계획 이행 사실상 실패
줄줄이 만기 도래 차입금은 연장 또는 담보대출로 '미봉책'
현대그룹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지난 2013년 스스로 내놓은 자구계획안 이행이 현대증권 매각 무산으로 사실상 실패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자산의 경우 제값을 받고 팔아 자구계획안을 100% 이행했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신용평가사는 실제 유입된 자금이 예정보다 7000억원가량 적은 2조5000억원에 그쳤다고 분석한다.
다만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 무산의 책임이 오릭스에 있다고 보고 현대그룹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은 애초 현대증권 매각 대금으로 상환하려 했던 차입금, 회사채, 기업어음 등을 추가 담보대출을 통해 상환키로 했다.
◆ 회사채 신속인수제로 3900억원 상환…나머지 빚은 추가대출로 갚는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상선을 포함한 현대그룹 계열사가 올해 내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 규모는 회사채 3900억원, 기업어음 2000억원 등 약 1조원가량이다. 대부분 현대상선이 상환해야 할 자금이다.
이중 가장 빨리 상환해야 할 빚은 오는 22일이 만기인 3900억원가량의 회사채다. 다행히 이 회사채는 시장안정 P-CBO(옛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통해 차환 발행하는 안이 확정돼 있다. 3900억원 중 20%는 자체 상환하고 나머지 80%는 신용보증기금이 대신 인수한다. 현대상선은 회사채 만기 상환을 위해 지난달 15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23일 만기 도래하는 2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대출(ABL)의 만기는 연장된다. 이 ABL은 산업은행이 현대상선 보유 현대증권 주식을 담보로 내준 대출이다.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 무산의 책임이 오릭스에 있다고 판단하고 만기를 매각 이후로 연장할 방침이다.
현대그룹은 올해 안에 만기 도래하는 나머지 차입금에 대해선 주식과 부동산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상환할 계획이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 5%, 현대상선이 보유 중인 현대아산 지분, 반얀트리 호텔 지분, 현대종합연수원 부동산 등 각종 자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을 계획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담보대출을 해줄 만한 은행을 찾고 있다"며 "아직 연말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담보대출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 내년 차입금도 1조원 안팎…현대그룹 "영구채 발행 추진"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 현대상선이 갚아야 하는 빚은 회사채 6000억원, 대출 3000억원 등 약 1조원가량이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내년 상환 계획에 대해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단 산업은행은 내년 상반기 현대증권 매각을 재추진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을 계획이어서 내년에 현대증권을 매각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현금이 유입될지는 미지수다.
점점 늘어나는 빚도 부담이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주식을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연 7%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일부 금융권 담보대출은 연 15%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제때 팔지 않고 계속 담보대출을 받고 있어 빚 상환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는 상태"라며 "자구계획안은 이행한 것으로 나오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은 연내 3000억~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구채 발행에다 추가 투자를 유치하면 빚 상환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 이후 곧바로 2000억원을 현대증권에 재투자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번 매각 무산이 전체 재무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그룹은 지난 2013년말 3조3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자구계획안을 수립한 바 있다. 현대상선은 LNG전용선 사업부문,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하고 각 계열사는 유상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