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대우그룹 해체 와중에 자동차 부품 계열사 코아비스는 개인 투자자 손에 넘어갔다. 그 후 10여년을 매출 1500억원 정도의 외형만 간신히 유지했다. 그러다 2012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인수, 기업 개조 작업에 돌입했다. GM·IBM 등에서 잔뼈가 굵은 사장을 영입하고, 기존 거래처 GM 외에 폴크스바겐에 납품 길을 뚫었다. 2012년 7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작년 122억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2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 코웨이는 2년 전만 해도 앞길이 불투명했다. 모기업 웅진그룹이 자금난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2013년 MBK파트너스가 웅진코웨이 지분 31%를 1조1915억원에 사들이면서 웅진과 손을 끊었다. 부실 계열사 투자는 정리하고 주먹구구식 경영을 데이터에 근거한 경영으로 바꿨다. 그 결과 코웨이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 1117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코웨이의 기업 가치는 2년 사이에 2배가 올라 3조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기업 사냥꾼' 이미지였던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PEF)가 이제는 우리 경제의 낡은 부분을 리모델링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회사에 날개를 달아 주고,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다가 멍든 기업을 살려 내고 있다.

가속도 붙은 사모펀드 증가세

최근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사상 최대 인수가인 7조2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국내 인수·합병(M&A) 시장 역사를 다시 쓰는 일도 있었다. 과거 이런 대형 기업 구조조정은 외국계 사모펀드나 대기업,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뒤에 있는 채권단이 주도했다. 하지만 이젠 국내 사모펀드가 앞줄에 서 있다. 이미 버거킹, 메가스터디, 에스콰이아, 대한전선 등 국민 귀에 익은 브랜드 기업의 주인이 사모펀드다.

사모펀드의 역할이 커지면서 증가세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국내 사모펀드 규모는 56조6000억원에 달했다. 1~9월 증가액이 5조4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4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사모펀드가 기업 가치를 올리는 성과도 뛰어나다. 자본시장연구원이 투자 회수가 끝난 기업 9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모펀드가 인수하던 시점에 평균 1070억원이던 기업 가치는 투자 회수 시점에 평균 2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불었다.

국내 사모펀드 규모는 1경원이 넘는 우리나라 전체 금융 자산과 비교하면 0.4%쯤밖에 안 되지만 경제를 휘젓고 다니면서 '연못 속 메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우리나라 재벌·대기업은 혈통을 중시하다 보니 비효율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사모펀드가 이런 비효율을 개선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전주(錢主) 확보는 과제

국내에서 사모펀드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현재 사모펀드 자금의 20%를 대는 국민연금이 저금리 속에서 수익률을 올리려면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연 9%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정부도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의 하나로 M&A 시장 활성화를 들면서 작년부터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고 있다. 14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투자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는 모든 증권사에 사모펀드 운용을 허용하는 방안이 들어 있다. 사모펀드 시장에 증권사 진입도 허용해 파이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주(錢主)가 국민연금만으로 한정되면 경제 리모델링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김재민 한앤컴퍼니 전무는 "사모펀드가 대주주가 돼서 적극적으로 기업을 뜯어고쳐야 우리 경제에 활력을 줄 텐데, 2~3대 주주나 맡으며 국민연금이 원하는 연 7~8% 수익률을 맞추는 데 그치려는 펀드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 사모펀드는 연기금 외에 개인·대학·재단 등 다양한 돈줄을 갖고 있다.

☞사모펀드

소수의 개인·기관투자자들로부터 비공개로 자금을 모아 기업이나 부동산을 인수한 뒤 되팔아 차익을 올리는 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