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과천지도]
과천시는 조선시대에는 과천현이었고 1914년 이후부터는 시흥군에 편입되어 과천면으로 불렸다. 한강까지 경기도 과천 땅이었는데 1963년에 서울특별시가 확장되면서 범위가 축소되었다.
현재는 한강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너지만 조선시대에는 나루터를 이용해야만 했다. 현재의 한강대교 서쪽에는 노량진 나루터가, 동쪽에는 동작나루터가 있었다. 9호선 노들역 2번 출구 노량진 배수지 공원에 노량진나루터 표지석이, 4호선 동작역 2번 출구 앞에 동재기나루터(동작나루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한강대교 남단에서 노들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오래된 기와집이 보인다. 왕은 배를 타지 않고 배다리(舟橋)를 만들어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임금이 쉬어가던 곳이 바로 이 용양봉저정이다. 이곳에 가면 정조가 수원 화성 가는 길에 건넜던 배다리의 모습과 이동 장면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옛 시흥 땅의 중심부인 금천구 시흥동, 안양의 만안석교를 지나 수원으로 향한다.
과천을 지나는 경로는 남태령을 지난다. 현재 4호선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사당역, 남태령, 과천, 인덕원이 등장한다. 대동여지도에서 옛 길을 보면 한양에서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과천, 수원, 진위, 평택, 직산, 천안으로 연결되는 길이 보인다. 남태령을 지나는 과천의 옛 길은 삼남지방으로 연결되는 대로(大路)였다.
과천역 7번 출구로 나오면 중앙동 주민센터를 찾을 수 있다. 옛 과천현 관아가 있던 곳이라 이야기 되는 곳이다. 주민센터 왼쪽 돌에 '온온사'와 '은행나무 600년'이라 적고 그림을 그려 놓았다.
이 은행나무와 온온사는 과천초등학교 옆으로 가면 볼 수 있다. 온온사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600년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은행나무 옆에는 '역대현감 비석군'이라 이름붙여진 과천현감들의 선정비와 영세불망비들을 모아 놓았다. 도로변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은행나무와 비석들을 보고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옥이 나온다. 이 건물이 과천의 객사(客舍)인 온온사(穩穩舍)이다. 설명문을 보면 인조 27년(1649)에 건립했고 1986년에 중앙동사무소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되어있다.
현대의 관아인 시청이나 도청은 빌딩으로 짓기에 건물이 몇 개 없다. 조선시대 관아는 객사, 동헌, 작청, 군기청, 사령청, 내아, 아사, 옥, 향청, 관청 등 여러 건물이다. 딱 한 군데를 관아 자리로 볼 수 없다.
온온사 입구 은행나무 근처, 과천초등학교, 중앙동 주민센터 부근에 관아가 포진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기에 지금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지도에서 과천 읍치(邑治)는 '읍(邑)', '행궁(行宮)', '향교(鄕校)' 만 표시되었다. 객사인 온온사가 행궁으로 생각된다. 향교는 과천 중학교 근처 등산로 입구에서 지금도 볼 수 있다.
향교 앞을 흐르는 계곡물이 양재천이 되고, 다시 탄천과 만나 한강으로 들어간다. 향교 앞을 지나 산을 오르면 관악산 연주암이 나온다. 연주암을 지나 올라가면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 기상관측소와 관악산 정상을 연결하는 능선이 나온다.
이 능선이 분수계 역할을 한다. 이곳에 나온 물이 현재의 과천으로 흘러가면 양재천이 되고, 반대 방향인 서울대 정문 방향으로 흐르면 도림천이 된다. 도림천은 안양천과 만나 한강으로 들어간다.
관악산의 백미는 연주대(戀主臺)이다. 대(臺)는 깎아지른 절벽, 자연 지형을 일컫는 말이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건물이 세워져 있고 이 건물에서 기도를 하고 있지만, 원래 연주대는 절벽을 말하는 것이다.
연주대 가는 길, 관악산 정상에서 북쪽을 보면 한강과 한강 북쪽까지 잘 보인다. 한양 도성의 남산은 서울타워가 세워진 목멱산이고 서울특별시의 남산은 관악산이다. 이 관악산을 풍수 관점에서 이야기할 때 서울의 조산(朝山)이라고 한다.
한양 도성은 북쪽의 백악, 동쪽의 타락산(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남산)을 연결한 것이다. 경복궁에서 임금은 남쪽을 향해 보고 있으니 동쪽의 타락산이 좌청룡, 서쪽의 인왕산이 우백호이다. 목멱이 남주작, 백악이 북현무에 해당한다.
안쪽의 이 네 산을 내사산(內四山)이라고 한다. 내사산 밖의 외사산(外四山)은 동쪽의 아차산, 서쪽의 덕양산(행주산성), 북쪽의 삼각산(북한산), 남쪽의 관악산이다.
도성 안에는 개천(청계천)이, 낙산과 아차산 사이에는 중랑천이, 덕양산과 인왕산 사이에는 모래내(沙川)가, 목멱과 관악산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편찬한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각 고을마다 진산(鎭山)이 등장한다. 배산임수(背山臨水)에서 마을 뒤쪽에 위치하는 산, 마을의 기준점이 되는 산이다. 이 산을 배경으로 이 동네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학교 교가에 등장하는 산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 진산(鎭山)을 풍수 용어로 주산(主山)이라고 한다. 지방 고을에서 주산, 진산, 북현무는 대개 같은 산이다.
지방 고을보다 규모가 큰 한양에서는 주산을 백악으로, 진산을 삼각산으로 분리해서 보기도 한다.
풍수지리에서 주(主)가 되는 산인 주산(主山)으로 연결되는 맥이 시작되는 산을 할아버지 산, 조산(祖山)이라고 보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산은 백두산이 되는 셈이다.
임금이 궁궐에서 남쪽을 보고 있다. 임금 앞에는 책상이 놓여 있다. 풍수지리에서 그 산을 책상 안, 안산(案山)이라고 한다. 남주작인 목멱이 안산(案山)에 해당한다. 인왕산 서쪽의 안산(鞍山)은 산 이름이 안산, 안현, 길마재이다. 한글이 같을 뿐이다.
임금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책상이 있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신하들이 서 있어야 한다. 이 산이 조산(朝山)이다. 바로 관악산이다. '조(朝)'의 의미는 '아침, 뵙다, 알현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예전에는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朝會)를 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신하들이 임금을 알현하는 것이 조회(朝會)이다.
백악 아래 궁궐이 세워지고 그 남쪽에는 안산(案山)인 목멱이 있다. 더 남쪽에 있는 관악산을 조산(朝山)으로 해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