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셜록 홈즈의 주소가 적힌 키링, 앤 셜리의 찻잔.

"셜록 홈즈 열쇠고리를 샀더니 책이 딸려왔어요."

요즘 책 시장에서 화제는 '도서 굿즈(goods)'다. 책에 나오는 캐릭터나 문장, 표지 디자인 등을 따서 만든 부록 상품을 말한다. 작년말부터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출판계 사방으로 번지고 있다.

도서 굿즈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출판 시장에서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부록에 의존한 마케팅이 진정한 독서 문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굿즈 상품은 간단한 텀블러나 다이어리, 부채 같은 소품부터 독서등, 탁상시계, 표지 디자인으로 만든 300 조각 퍼즐, 책 속 인용문이 찍힌 베개와 수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도서 굿즈의 상당수는 공짜 사은품이다. 몇 가지는 따로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정액 이상의 도서를 구매하거나 이벤트 도서를 살 경우에 부록으로 준다. 그러자 이제는 마음에 드는 사은품을 얻기 위해 최소 구매액인 3~5만 원어치의 책을 사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교보문고의 김현정 브랜드관리팀 담당자는 "작년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면서 할인률로 고객을 끌지 못하게 된 서점들이 색다른 마케팅으로 시작한 것이 굿즈 전략"이라면서 "최근에는 점차 출판계에서 범위를 넓혀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책 표지 디자인을 딴 베개.

침체된 출판 시장에 활력 소재

최근 들어 도서 굿즈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곳은 온·오프라인 서점인 알라딘이다. 알라딘이 새 굿즈 소식을 올리면 트위터에서는 평균 300건의 리트윗이, 페이스북에서는 200건 이상의 '좋아요'가 따라붙는다.

포털 사이트에서 '알라딘 굿즈'를 검색하면 한 달 사이에 올린 포스팅만 190여 건이 눈에 띈다. 지난 7월 알라딘이 1만 4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평가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4명 중 1명꼴로 '서점 서비스 중 굿즈가 가장 좋다'고 답해 1위를 차지했다. 다른 온라인 서점과 일부 출판사들도 이런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책 내용을 적은 독후감 대신 '굿즈'를 자랑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뜬다. 베트맨 맥주컵을 구매한 임성호(26·서울 종로구)씨는 "책을 디자인한 파생 상품이라기보다 하나의 독자적인 콘텐츠로 이해하고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다. 자신을 '셜로키언(셜록 홈즈 팬)'이라고 소개한 서하은(26·서울 서초구)씨는 "좋아하는 인물의 물건을 현실로 가질 수 있다는 쾌감 때문에 굿즈도 구매한다"고 말했다.

90년대 팬문화에 책 특유의 감성 매력 더해

도서 굿즈의 인기는 최근 소비자들의 구매 트렌드를 반영한다. 첫번째는 이른바 팬심(fan心) 문화다. 도서 굿즈를 산 사람의 상당수는 곧바로 블로그와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린다. 좋은 굿즈를 '득템'했다는 사실을 서로 알리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런 현상은 90년대 초중반, 1세대 아이돌 그룹의 팬덤 문화를 연상시킨다. 당시에 인기있는 뮤지션의 팬임을 알리는 일종의 물증이 굿즈(goods)였다. 이런 물건에는 흔히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이나 얼굴,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이 굿즈가 출판업계로 넘어온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진종훈 문화평론가는 "책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굿즈를 주고 접하게 함으로써, 이런 경험이 책도 거부감 없이 집어들게 만드는 체험 마케팅"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책 특유의 디자인이 주는 미적 만족감과 지적 상품이라는 이미지도 한몫 한다. 책이라는 '물건'이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까지 발산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서점에서 경구가 적힌 텀블러를 구매한 문새롬(23·서울 중랑구)씨는 "요즘은 책 표지 디자인도 여느 디자인 못지 않다"면서 "북 디자인은 깔끔하면서도 의미가 깊어 제품을 사고 싶게 만든다"고 말했다. 문씨가 손에 든 텀블러에는 '책은 너무 많고, 읽을 시간은 짧다'는 인용문이 적혀있다.

교보문고 광화문 점의 '펭귄북스 굿즈' 진열대.

◆펭귄북스는 디자인 본딴 별도 매장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아예 '펭귄 굿즈' 매대까지 따로 뒀다. 펭귄북스 특유의 디자인을 따서 만든 지갑, 노트, 여권 케이스 등을 파는 곳이다. 이 코너를 담당하는 권미정 대리는 "펭귄북스만의 디자인 매니아가 있다. 단순히 디자인만 보는 건 아니다. 깔끔한 디자인에 문고본, 책의 이미지가 덧입혀져 매니아 층이 있다"고 했다.

펭귄북스 경우는 아예 출판사가 굿즈 디자인과 제작까지 겸하기도 한다. 출간된 책을 기반으로 해서 미술 작가와 함께 2차 파생 상품을 제작해서 파는 출판사도 생겨났다.

굿즈 마케팅은 도서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출판사와 서점, 도서 작가의 이해관계가 대체로 일치한다. 따라서 디자인 저작권을 둘러싸고 큰 갈등 없이도 협업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편이다.

마케팅 효과에 대한 자체 평가도 좋은 편이다. 지난 9월 시공주니어는 '빨간머리 앤' 출간을 앞두고 도서 굿즈인 틴 케이스(금속제 상자 팬시상품)로 마케팅전을 편 결과, 7~8배 판매율 신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공주니어의 정주호 마케팅부 과장은 "틴케이스, 북스텐드 등 다양한 파생상품 아이디어가 나왔다"며, "서점에서는 상품 제작을 맡았고, 출판사는 스토리를 짠 뒤 상품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민음사의 허진호 마케팅부 부장은 "7~8월 여름이 출판계 성수기인데 수건 마케팅을 진행한 9월에도 판매 수준이 유지됐을 정도"라며 "특히 SNS 반응이 좋다"고 했다.

표지 본딴 노트에서 시작, 목침까지 등장

2010년대 초, 국내에 도서 굿즈가 처음 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책 표지 디자인을 빼다박은 노트가 거의 유일했다. 그 뒤로 필통으로 옮겨가더니 파우치에 이어 목침(나무베개)까지 등장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남한강편'의 굿즈 목침.

지난 14일 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한강편'은 굿즈로 편백나무로 만들어진 목침을 선보였다. 목침에는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저자가 백제의 미학을 이야기한 대목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민음사는 교보문고, OIMU와 함께 알베르 까뮈, 헤르만 헤세 등의 명문이 담긴 '성냥 굿즈'도 제작했는가 하면, 셜록 홈즈의 집 주소가 적힌 열쇠고리나 빨간머리 앤 찻잔 세트도 있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 파수꾼'을 구매하면 재치있는 인용문이 찍힌 수건이 함께 배달되기도 한다. "얼굴이나 씻으라고 말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난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수건을 포장한 종이상자도 호밀밭 파수꾼의 표지 디자인과 똑같다.

'웃기는 소리 하네',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고' 같은 도발적인 인용문구가 적힌 수건은 책과는 별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민음사의 허진호 마케팅부 부장은 "책갈피, 북홀더처럼 도서 관련 용품 이외에도 생활 속에서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찻잔이나 키링, 파우치 같은 상품까지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밀밭의 파수꾼 판촉 수건(위·알라딘 제공)과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속 명문을 담은 성냥(아래·교보문고 제공)

피상적 상품 소비 아닌 독서 문화 기폭제로 이어져야

하지만 굿즈를 통한 도서 마케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혁준 문화평론가는 "옛 잡지의 부록 문화가 단행본 굿즈로 넘어온 것"이라며, "옛날 잡지도 한때 독자들이 책보다 부록에 더 관심을 갖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 출판사가 자정 운동을 펼쳤다"면서 "1차원적인 콘텐츠 활용을 넘어 책 내용에도 집중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케팅의 획일화가 독서의 다양성과 선택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진종훈 문화평론가는 "각 서점만의 정체성과 지향점이 있을 텐데 한 가지 마케팅이 잘 됐다고 해서 똑같이 따라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도 좋지 않다"면서 "마케팅이 다양해지지 않으면 그만큼 선택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