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은 롯데가(家) '왕자의 난'이 다시 재개된 날이었다. 이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큰 아들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는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국과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 5시쯤, 호텔롯데 신관 로비에 서 있던 기자는 신동주 대표를 비롯한 가족들에 섞여들어 34층 신총괄회장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이날 오전의 기자회견 내용을 신 총괄회장에게 보고하려던 가족들은 사전 약속이 없었다는 이유로 총괄회장의 정식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면서 신 총괄 회장에게 인사와 간단한 질문을 한 뒤 신동주 대표의 보고에 배석하는 것은 허락했다. 롯데가 형제의 난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이 기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롯데가 후계 다툼은 지난해 12월 26일 신동주 대표가 롯데 계열사 이사직에서 해임되면서 촉발됐다.

8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호텔 34층 집무실 정 중앙의 소파에 앉아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받았다. 신 회장은 보라색 상의에 남색 니트 조끼를 입고, 회색 담요를 무릎에 덮고 있었다. 머리와 수염은 잘 정돈돼 있었다. 안색도 좋은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말끔한 모습이었다.

◆ "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형사소송하고 조금도 물러서지 마라"

신동주 대표가 신 총괄 회장에게 서류를 건넸다. 서류에는 보고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신 총괄회장은 서류를 한 줄 한 줄 손으로 짚어가며 한참 동안 살펴봤다.

신 총괄회장은 단호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민사와 형사 소송을 모두 동시 진행하라고 몇번이나 반복해 지시하면서 "단 한발도 물러서지 마라"라고도 말했다. 신 총괄회장은 "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 했다는 것도 소송 내용에 들어갔느냐, 이건 횡령 아니냐"고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과 일본 두 곳에서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변호사들은 유능한지 재차 확인했다. 변호사 수임료까지 물으며 소송 준비를 철저하게 하라고 주문했다. 신 총괄회장은 변호사 수임료를 듣더니 '그게 엔화로 계산한 거냐'라고 확인한 후, "큰 돈이긴 해도 이것으로 사태가 끝날 수 있다면 다행이니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말했다.

신동주 대표가 "알겠습니다. 전부 제가 할 테니 아버지는 안하셔도 됩니다. 맡겨주세요"라고 답하자 신 총괄회장은 다시 한번 "철저하게 해야 한다. 제대로 일해주지 않을 사람은 고용하지 않는 게 좋다"며 "자주 와서 소송 상황을 보고하라"고 했다.

◆ "믿고 맡긴 아버지보고 바보가 됐다니…"

신 총괄회장은 모든 상황을 정밀하게 파악하거나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명확하고 일관적이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챈 둘째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자신의 건강 논쟁을 의식한 듯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느니 바보가 됐다느니 하면서 재산을 빼앗으려고 하다니 이건 대단한 범죄 아니냐"고 말했다. "자신(신동빈회장)은 장남이 아니라, 장래에 장남이 후계자가 될까봐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고도 했다.

특히 신 총괄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벌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아키오(신동빈 회장)가 스스로 일해서 번 돈이 1억원이라도 있느냐"고 신동주 대표에게 여러 차례 다그쳐 물었다.

약 15분간의 대화 속에서 "참...나쁜 놈 아닌가"라는 말이 두 번 나왔다. "이런저런 반대를 물리치고 (신동빈 회장에게) 일을 맡겼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 "허락 받지 않고 투자해 손실본 중국 사업, 책임 물어라"

중국 사업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도 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사전에 허가도 받지 않고 투자해서 사업에서 손해를 봤으니 본인 재산으로 갚으라고 하라"면서 "자기 맘대로 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중국사업 문제에 대해 신 총괄회장에게 여러차례 승인을 받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신 총괄회장은 여러차례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 총괄회장은 오히려 신동빈 회장의 독단으로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고 믿는 듯 했다.

신 총괄회장의 중국투자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신동주 대표보다도 더 강력한 듯 했다. 그는 신동주 대표에게 "중국에 얼마 투자했다고?"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신 대표가 "몇 조원 대입니다"라고 말하자, 신 총괄회장은 그런 수치도 모르냐는 어조로, "3조원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보고가 끝난 뒤에 신 총괄회장은 다시 한번 가족들을 불러세웠다. 가족들은 복도를 지나다 다시 신 총괄회장 방으로 들어갔다. 그간 15분여간 나눴던 이야기를 신 총괄회장이 종합해서 정리하는 자리였다.

신동빈 회장을 회장직에서 내려오도록 하고, 스스로 벌어온 돈이 없고 손해만 봤으니 이에 대한 책임을 물으라고 했다. 형사를 포함한 소송을 철저하게 진행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마음대로 하려고 했으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누차 말했다.

이날 신 총괄회장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신동주 대표를 배려해 일본어로 대화를 진행했다. 하지만 기자가 신 총괄회장에게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자 우리말로 "안 들리니 좀 크게 말하라"며 "열심히 해달라"고 말했다. 분노가 풀리지 않는 듯 표정은 굳어 있었다.

신 총괄회장은 신동주 대표를 매우 엄격하게 대했다. 때론 "알았나?"라고 군대식으로 몇번이나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친인척한테는 간간히 미소를 보이기도 했고, 말투도 한결 부드러웠다.

신 총괄회장 가족 중 한명은 "신 총괄회장과 아들과의 관계는 회사 내부 상하관계에 가까워 엄격한 분위기"라며 "신 총괄회장은 신동주 대표 앞에서는 거의 웃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롯데그룹 바깥에 있는 동생이나 친족에게는 웃는 얼굴도 자주 보이시는데 지난번엔 자신의 해임사실을 언급하며 '너희는 나이먹지 마라'라면서 웃기도 하셨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