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동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 지상 7층 규모 상가빌딩 중개 업무를 맡았던 A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당초 2000억원에 팔기로 합의했던 건물주가 계약서를 쓰려는 자리에서 "그 가격에는 절대 못 팔겠다"고 버틴 것. 건물주는 당초보다 1000억원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3.3㎡(약 한 평)당 땅값으로 치면 5억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A씨는 "매수자가 계약금으로 400억원을 준비해 갔는데 가격 차이가 너무 커 결국 계약을 못 했다"고 말했다.

지하철 9호선 개통 이후 강남역~신논현역에 이르는 서울 강남대로 상권(商圈)의 가치가 국내 상가 1번지인 서울 명동(明洞)을 위협할 만큼 치솟고 있다. 강남대로의 대로변 건물은 땅값 기준으로 시세가 3.3㎡당 4억~5억원을 호가한다. 상가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층 상가 월세가 3.3㎡당 100만원을 넘는 곳이 드물었으나 올 들어 최고 200만원까지 올랐다. 김우희 저스트알 대표는 "9호선과 분당선 지하철 개통, 외국인 관광객 유입, 삼성타운 효과 등이 겹쳐 강남대로 상권이 블랙홀처럼 유동인구를 흡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가장 비싼 상가 등장

최근 서울 강남대로 교보타워 인근에 1층 분양가격이 3.3㎡당 2억8000만원인 상가가 등장했다. 이는 국내에 분양한 상가 가운데 최고가(最高價)다. 그동안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3.3㎡당 1억원 넘는 상가가 이따금 공급됐다. 2007년 잠실 트리지움 아파트의 단지 내 상가 1층 점포가 1억1000만원을 기록한 이후 2010년 강남역 이면도로에 들어선 '강남지웰타워Ⅱ'가 1억5500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전국 최고 상권으로 꼽히는 명동에서도 3.3㎡당 2억원이 넘는 가격에 분양한 상가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분양회사 관계자는 "이미 1층은 국내 유명 화장품업체가 플래그숍으로 임차하고 있어 연 5% 이상 수익이 충분히 보장된다"면서 "분양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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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의 상가 임대료도 가파른 상승세다. 대로변 1층 상가는 월세가 3.3㎡당 평균 100만~150만원, 최대 200만원까지 육박했다. 이는 서울시내 주요 상권의 평균 임대료가 30만~4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기존 상인들은 치솟는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면도로변으로 밀려나는 대신 그 자리를 대형 유통업체 매장이 점령하고 있다. 이미 네이처리퍼블릭·자라·지오다노·르꼬끄 등 화장품·패션회사들이 강남대로 1층에 입성했다. 이들은 3.3㎡당 평균 월 150만원 안팎의 월세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동도 따라잡는다"

무섭게 성장하는 강남대로 상권이 명동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강남대로의 경우 상가빌딩 매매가격이 3.3㎡당 최대 5억원대에 달한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인근 옛 뉴욕제과 빌딩 부지 670㎡가 1050억원에 팔렸다. 3.3㎡당 5억1700만원인 셈이다. 황용천 해밀컨설팅 대표는 "강남대로변에는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임대료를 역산해 보면 시세가 3.3㎡당 4억~5억원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 명동과 맞먹는 수준이다. 현재 명동의 경우 땅값(공시지가 기준·3.3㎡당)은 최고 3억원에 육박한다. 이곳 역시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매매 시세를 3.3㎡당 5억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아직 월 임대료(1층 기준)는 명동이 다소 높은 편이다. 강남대로가 3.3㎡당 200만원에 못 미치지만 명동은 200만~300만원 선이다. 명동의 경우 국내 최고 상권이라는 프리미엄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는 이유에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남대로가 명동보다 장기적으로 상권 성장 잠재력은 더 크다는 분석도 많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서울 강남대로는 내국인 중심으로 유동 인구가 형성돼 있고 아직 주변 지역 개발 여력도 충분하다"며 "향후 판교 개발이 가속화하면 수요가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