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서 관련부서 공무원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협의했는데 현장감이 크게 떨어져요. 세종시에 살다 보니 사교육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공감을 못하는 것 같아요."

세종시에 근무하는 경제부처 고위 간부는 "세종시 출범 3년째를 맞아 공무원들의 사기뿐 아니라 역량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밀집한 서울을 떠나 세종시로 이주한 지 2년을 넘기면서 현장 방문이나 전문가들을 만나는 게 점점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세종시 도담동 상가 밀집 지역. 왕복 2차로에 주차 차량까지 겹쳐 도로가 꽉 막혀있다.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종시에 사는 공무원들은 전세난도 더 이상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올 7~8월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고공행진하던 때 세종시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두 달 연속 하락했다. 세종시 건설 이후 최근까지 아파트가 4만여채 쏟아지면서 집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세종시 입주 이후 연말정산 대란과 같은 정책 혼선이 있었고 메르스 사태에서도 대응에 문제점이 나타난 이유를 세종시의 비효율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다. 경제 부처 B사무관은 세종시에만 매인 삶이 불만이다. 그는 "과천에 있을 때는 수시로 전문가들을 만났는데, 세종은 교통이 불편하고, 변변히 만남을 가질 공간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사무관인 나까지 서울 가겠다고 자리를 비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세종시에는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등 주요 정부 부처 등 36개 중앙행정기관과 소속기관, 한국개발연구원, 조세재정연구원 등 14개 국책연구기관이 이전했다. 하지만 세종시는 각종 지원시설의 공정이 더뎌 불편이 여전하다.

(위 사진)건설 3년째를 맞은 세종시는 주차난과 교통 불편, 편의시설 부족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세종호수공원 쪽에서 대통령 기록관(사진 왼쪽 둥근 건물)과 국무조정실,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등의 정부청사와 아파트촌이 보인다. (아래 사진)호주의 행정수도 캔버라는 1927년 의회가 이전한 이래 문화와 교육, 상업 등이 어우러진 인구 40만명에 육박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캔버라의 국회의사당(가운데 사각형 건물)과 벌리 그리핀 호수를 지나 국립박물관, 전쟁기념관 등 국가 시설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종 시내에는 기차역이 없어 KTX를 타려면 오송역까지 차로 20분 넘게 가야 한다. 제2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 서울~세종 구간을 자동차로 51분에 주파할 수 있다. 하지만 충청 지역에서는 "너무 편하게 서울을 오갈 수 있게 되면 공무원들이 세종시에 내려와서 살지 않는다"며 세종시의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자전거로 다니는 도시로 만들겠다'며 가장 넓은 시내 도로만 4차선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2차선 도로를 건설한 바람에 벌써 일부 상가 밀집 지역에는 2차로 양쪽으로 불법 주차가 판친다. 이처럼 곳곳이 비효율투성이인데도, 이를 수정하거나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고민도 없이 초기 건설안을 달성하는 데만 급급한 실정이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세종시는 모든 사람에게 도심 녹지를 보장하겠다는 등의 목표에만 집착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핵심 기능이 변두리로 배치돼 불편한 도시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세종시가 목적에 맞게 건설되고 있는지 점검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호주의 '百年大計 수도' 캔버라] 세종시엔 없는 3가지가 있다

①대학·문화시설 등 복합도시로
②5년마다 도시계획 재점검
③행정부의 對국회업무 효율화

지난달 29일 호주 행정 수도 캔버라의 최대 쇼핑몰 '캔버라 센터'. 점심때가 되자 식당가에 공무원과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같은 건물에 호주 국세청이 있고 외교통상부, 국토지역개발부 등 정부 부처도 걸어서 3분도 안 걸린다. 국가수도전시관의 레슬리 애플랙(Affleck)씨는 "캔버라는 민(民)과 관(官)이 융합해 상승 작용을 내도록 도시를 설계했다"고 했다.

캔버라는 1908년 수도로 결정될 당시 농부 1700여명이 말과 양 등을 기르던 초원지대였다. 1927년 국회의사당부터 캔버라로 이전했고 이후 차례로 정부 부처와 국립박물관 등 주요 국가시설이 이전했다. 정부 기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도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1923년 호주 정부 관계자들이 캔버라 행정수도 부지를 시찰하는 모습.

1946년 호주 의회의 입법으로 호주국립대가 설치됐다. 김봉현 주호주 한국 대사는 "캔버라는 정치의 중심인 동시에 교육의 중심지"라고 했다. 현재 캔버라의 지역 총생산(GRDP) 중 30%가 유학 등 교육 서비스에서 나온다. 또 전쟁기념관, 국립박물관 등 주요 국가 시설도 대부분 들여왔다. 이 시설들은 캔버라를 찾는 수십만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캔버라는 1958년 정부에 연방수도개발위원회라는 특별조직을 구성해 350여명의 엔지니어, 건축가, 컨설턴트 등을 끌어들였다. 민간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도시 설계 곳곳에 반영했다. 도시로서의 매력 덕분에 지난 3월 말 캔버라 인구는 39만명으로 초기 계획(7만5000명)에 비해 5배 이상 성장했다. 인구 중 민간 전문가 비율이 21%, 의료·사회 분야 종사자가 14%에 이른다. 해외 전문가도 속속 유입돼 현재 캔버라 인구의 4분의 1이 해외 출생으로 집계된다.

캔버라는 외부와 소통과 교류를 통해 호주 대표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주요 7개 도시에 취항하는 캔버라 공항은 외교통상부, 산업과학부, 국토지역개발부 등 주요 관공서까지 차로 불과 11분 안팎 걸린다. 캔버라 관가에 위치한 시티 스테이션(버스정류장)에는 캔버라 내 6개 위성도시와 다른 대도시를 잇는 54개 노선의 버스가 운행된다. 지난해에는 장기 도시 발전 전략인 시티 플랜(the City Plan)을 채택했다. 이 계획도 앞으로 최소 5년마다 재점검한다. 100년을 내다보고 도시를 건설한 데 이어, 시대 변화에 발맞춰 필요한 부분은 즉각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호주도 초기 행정 비효율 문제를 겪었지만 다양한 지혜로 극복했다. 호주 의회에서는 장·차관이 아닌 실무자가 의회에 사안을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주 공무원들은 의회가 정한 출석 기간에만 출석하면 된다. 호주 의회 경제위원장인 존 알렉산더(Alexander) 의원은 "지금도 비행기로 50분이면 시드니에 갈 수 있지만 시드니와 캔버라, 멜버른을 잇는 고속철을 만들어 효율성을 더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