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힘 바우어 지음 |전진만 옮김|책세상|296쪽|1만5000원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이 광고 문구에 공감한 당신, 커피나 에너지음료를 마셔가며 야근까지 일삼다 주말에는 피로에 전 나머지 '집돌이' '집순이'로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근로자의 주당 노동 시간은 평균 52시간으로 세계 2위다. 통근 시간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고(편도 58분), 수면 시간(6시간35분), 연평균 휴가사용일수(6일)는 최하위다.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도 11년째 계속되고 있다.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일반 직장인은 10명 중 7명꼴로 '번아웃(Burnout·소진) 증후군'을 호소한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일에만 몰두한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흔히 불면증이나 심신불안, 무기력, 피로, 자존감 상실, 사고력 저하 같은 증상도 따른다. 심한 경우 자살을 낳기도 한다. 겉으로만 보면 직장 밖의 요인으로 생기는 우울증 같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정신적으로 나약한 인간이 일이 싫어 꾀병을 부리는 것쯤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 저자는 번아웃을 직장 안에서 일어나는 노동 질환으로 규정하고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진단한다. 일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노동의 가치는 어떤 사상적 맥락에서 형성됐는지, 일과 삶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등을 신경생물학적, 심리적, 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저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 심신상관의학과 교수, 독일 산업안전보건부 및 질병통제센터 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그 동안 현장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로또에 당첨돼 수십억을 손에 쥐게 된다면 당신은 일하겠는가?" 2012년 독일 갤럽이 이런 설문 조사를 해봤다. 전체 노동 인구 중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무엇을 말하는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은 돈벌이 이상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일로 번아웃을 겪기도 하지만 일을 통해 자기만족, 자아실현을 충족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일은 억압으로 변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고대와 중세를 지배한 근면, 성실, 절제, 인내 등의 종교적 금욕주의가 '효율성', '생산성'이라는 근현대 자본주의적 노동 윤리와 결합한 결과다. 다량의 업무를 동시에 신경써야 하는 멀티태스킹 환경에서 근로자의 뇌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장시간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자의 일이 점점 인스턴트화하는 것 또한 번아웃 요인이다. 저자는 영국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리처드 세넷 교수의 표현을 빌려 직업이 저임금 임시 노동을 상징하는 '맥잡(McDonald's Jobs)'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필요할 때마다 한정된 시간에만 단기적으로 투입하는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는 자신의 업무 분야를 꾸준히 발전시켜 궁극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어렵다.

저자는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에 대처하기 위해 다각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몇 가지 구체적인 해법도 제시한다. 직원들에게 역량에 맞는 과제를 부과하라, 세세하게 간섭 말고 직원 스스로 업무 속도를 조절하게 하라, 노동의 대가를 합당하게 지급하라 같은 조언들을 내놓는다.

대부분 경영진에 대한 주문이다. 갈수록 인스턴트식 일자리만 넘쳐나고, 그런 상황에서도 경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근로자들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지, 그만한 보상을 받고 있는지, 과도한 업무에 번아웃 상태인 자신에게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지, 혹시 이미 노동 중독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하기 위해서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