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핀란드는 사우나로 유명한 나라다. 겨울 기온이 매우 낮아 혈액 순환에 효과가 좋은 사우나 문화가 발달했다.

‘스타트업 사우나’는 이 사우나에서 유래한 단어로, 핀란드 알토대학 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이 곳에서는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로비오와 ‘클래시오브클랜’의 개발사 수퍼셀 등이 배출됐다. 오랜 세월 핀란드의 자랑이었던 ‘사우나’에서 새로운 자랑거리가 나온 셈이다.

핀란드 알토대학 내 스타트업사우나에서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스타트업 사우나에서는 학생들의 벤처 창업에 대한 지원과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 ‘스타트업 슬러시’라는 이름의 창업 관련 컨퍼런스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고객 및 투자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 외에 창업과 관련된 다양한 것들을 교육한다.

핀란드를 포함한 유럽, 그리고 미국 등 전통적인 선진국들은 물론 중국과 같은 신흥 벤처 강국에서도 산학 협력은 벤처 생태계 성공의 필수 조건으로 꼽힌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이 한 곳에 모여 대규모 연구·산업 단지를 형성하고 공동 연구와 제품 개발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내 창업 지원과 중국 경제단체와의 산학 협력(한밭대의 ‘중국산학협력중점기지’) 등 몇가지 사례들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고 벤처 업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 실리콘밸리, 스탠포드대 주도로 탄생한 거대 산학 협력 단지

미국 실리콘밸리는 벤처 기업과 대학 간 산학 연계의 원조(元祖)격이다. 실리콘밸리 내 1호 기업은 프레드 터만 스탠포드대학 교수의 지원으로 두 명의 학생 휴렛과 팩커드가 설립한 전자 계측기 장비 업체 휴렛팩커드(HP)였다.

이를 시작으로 인근 지역에서 대학생들의 창업이 잇따랐으며, 스탠퍼드대학은 연구소와 대규모 연구단지를 설립하며 실리콘밸리 형성의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스탠퍼드 연구단지에는 수십개의 벤처 기업이 입주했으며 다른 많은 연구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실리콘밸리 인근에는 스탠포드대학 외에도 UC버클리, UC샌프란시스코 등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배출되는 인재들 중 상당수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하거나 지역 벤처기업에 입사하고 있다.

산학 협력이 보편화된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 생태계는 유능한 대학생들에게 자연스레 ‘창업 마인드’를 심어줬다. 실제로 하버드대와 MIT, 뱁슨대 등 200여개 미국 대학은 학내 기업가 센터를 통해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미국에 갔을 때 하버드와 MIT 학생들이 창업에 굉장히 열성적인 것을 보며 강한 인상을 받았다”며 “비즈니스 스쿨에 가보니 졸업생 대다수가 스타트업에 가고 싶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실리콘밸리 외에도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라는 이름의 바이오 산학 협력 단지가 있다. 이 곳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캠퍼스를 비롯해 지역 병원의 교육·연구 기관들이 입주해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미국 바이오 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 가운데 약 13%가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 내 기업에 투자됐다. 산학 연계가 충실히 이뤄지고 있어 바이오 업체의 신규 설립도 활발하다.

◆ ‘앵그리버드’·‘클래시오브클랜’의 고향, 핀란드 알토대학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는 핀란드가 특히 산학 연계가 잘 되고 있는 나라로 꼽힌다.

벤처 업계 관계자들은 핀란드 내 산학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토대학을 꼽는다. 알토대학은 융합 기술 교육과 창업을 주 목적으로 한 일종의 스타트업 특성화 대학이다. 2010년 핀란드 국립대학인 헬싱키공과대학·헬싱키경제대학을 통합해 설립했다.

수퍼셀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 ‘클래시오브클랜’

알토대학에는 위에 언급된 스타트업 사우나 외에도 ‘벤처 차고’라는 창업 지원 센터가 있다. 휴렛팩커드, 애플 등이 몇몇 대학생들에 의해 차고에서 탄생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창업 지원센터에서는 매년 2회씩 20팀씩 선정해 ‘창업 사우나’라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세대 산학협력단이 낸 ‘민간의 자생적 벤처·창업생태계 조성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이 첫해 배출한 36개 기업은 창업 후 1년 동안 약 860만유로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 중관춘, R&D 인력만 13만명 이상

중국에서도 산학 연계를 통한 벤처 산업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베이징 내 IT기업 단지 중관춘(中關村)에서는 대학과 기업 간 협력 모델을 지원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이 곳에는 1만7000여개의 기업 본사와 R&D센터가 몰려있으며 40여개 대학과 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 등 200여개 국립 연구소가 밀집돼있다. 중관춘 내의 연구 개발 인력만 13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베이징 중관춘의 창업카페인 처쿠카페

중관춘 내 기업들은 베이징대나 칭화대와 공동 프로젝트를 하며, 이를 통해 원천 기술 확보와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 대학 역시 기술료와 배당 수익 등을 얻어 재정 능력을 강화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다.

실제로 중국에는 대학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칭화홀딩스는 칭화대학교가 지분 전량을 소유한 회사로, 기존에 설립된 샤오반기업(대학이 운영하는 기업)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유 지주사다. 칭화홀딩스가 지분 51%를 보유한 자회사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7월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에 M&A를 제안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유안타증권은 “산학 협력은 1세대 공동 프로젝트 단계, 2세대 학교 기업 설립 단계, 3세대 학교 기업의 양·질적 성장, 4세대 그룹화 등 총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산학 협력이 1~2세대에 머물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이미 4세대 산학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