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인천 도화동에 있는 타이거일렉 본사. 공장 안을 둘러보는데 요란한 소리를 내는 커다란 수조가 눈에 들어왔다. 수조의 길이는 20m, 폭은 약 1.5m. 자세히 보려 계단을 올라가 내려다보니 어둠 속에서 혼탁한 액체가 거품을 일으키며 출렁이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를 켜니 그제서야 푸른빛이 눈에 들어왔다.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금통이에요. 한때 기술 개발하느라 너무 힘들 때는 밤마다 이 도금통 안에서 헤엄치는 꿈도 꾸고 그랬어요.” (이경섭 대표이사)

타이거일렉 공장 내 도금통의 모습

25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에 상장되는 타이거일렉은 반도체 검사용 PCB 제조업체다.

반도체를 제조하기 위해선 검사 장비와 반도체 제품 간에 전기 신호를 전달해주는 부속장치가 필요한데, PCB란 이 부속장치를 구성하는 부품을 말한다. 타이거일렉이 1차로 반도체 장비 업체에 PCB를 납품하면, 이 업체에선 PCB를 갖고 반도체 장비를 만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파운드리(생산) 업체와 중국 화웨이·샤오미 등에 판매한다.

타이거일렉의 전신은 1991년 이 대표가 동업자 한 명과 함께 설립한 ‘신화산업’이다. 당시 스물 아홉 살이었던 이 대표는 전자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반도체용 PCB 업계에 뛰어들었다.

첫 매출처는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였던 인터스타였다. 인터스타는 타이거일렉과 거래하는 조건으로 다른 반도체 장비 업체에는 PCB를 팔지 말 것을 요구했다.

타이거일렉은 인터스타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덕에 인터스타의 PCB 중 약 80%를 납품하며 독점했지만, 2002년 들어서 위기가 찾아왔다. 인터스타가 소프트뱅크파이낸스코리아에 매각되면서 반도체 장비 사업을 접은 것이다.

이 대표는 눈앞이 캄캄했다. 인터스타에 납품하면서 다른 매출처는 확보해놓지 못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물건을 판매할 곳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타이거일렉은 다행히 반도체 장비업체인 TSE에 프로브카드(반도체 전공정 진행 후 각 칩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부품) PCB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 군데 업체와 거래하는 게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이 대표는 매출처를 점차 늘려갔고, 현재는 100여개의 회사와 거래하고 있다.

타이거일렉과 TSE의 인연은 단순히 제품을 사고 파는 관계에 그치지 않았다. 2009년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더 큰 회사와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한 이 대표가 권상준 TSE 회장을 찾아가 M&A를 제안했다. 그리고 2011년 1월, 타이거일렉은 TSE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타이거일렉이라는 사명은 ‘(호랑이처럼) 강한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이 대표의 꿈을 담고 있다.

타이거일렉의 주력 제품은 위에 언급한 프로브카드PCB, 로드보드(반도체 후공정 후 전기적 특성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신호를 전달하는 장치) PCB, 소켓보드(로드보드와 마찬가지로 제품의 전기적 기능과 특성을 평가하는 보드) PCB 등이다.

이 중 올 프로브카드PCB가 올 상반기 기준으로 전체 매출액의 37.68%를 차지했으며, 로드보드 PCB가 26.33%로 그 뒤를 이었다.

이 중에서도 타이거일렉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고다층(高多層) PCB인 프로브카드 PCB다. 고다층 PCB란 회로와 비절연체를 켜켜이 쌓아올려 여러 층으로 만든 PCB를 말한다. 타이거일렉은 현재까지 116층을 쌓아올린 상태다. 경쟁사들은 약 60층까지 쌓아올렸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고다층 PCB는 각 층별 틀어짐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타이거일렉은 자체 고안한 장비를 통해 층간 틀어짐을 기존 대비 절반으로 줄였다.

또 켜켜이 쌓은 층에 작고 깊은 구멍을 내 1층부터 116층까지 연결, 전기가 통하도록 하는 기술이 중요한데, 타이거일렉은 이 구멍 깊이 대 크기의 비율을 36대1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국내 경쟁사들의 경우 이 비율이 25대1 수준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타이거일렉 공장 내 PCB 제조 공정

지난해 타이거일렉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 대비 18.7% 증가한 258억9993만원이었다. 영업이익은 78% 증가한 35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회사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중국 시장 개척이다.

“중국 현지에도 PCB 업체들이 많지만, 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대부분 업체들이 범용 PCB를 만드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어요. 개발하기 어려운 특수 보드 시장에 뛰어들려는 회사는 많지 않죠. 우리의 주력 제품은 특수 보드인 고다층 PCB이니, 중국 내 틈새시장에 진출하려는 겁니다.”

타이거일렉은 2년 전부터 중국 내 반도체 설계 업체 한 곳에 PCB를 납품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시장이 워낙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매출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대표는 전망했다.

이 외에도 타이거일렉은 최근 대만 TSMC와 거래하는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았다. 이 회사의 연간 PCB 사용량이 약 200억원어치에 달하는 만큼, 실사 후 거래가 성사되면 상당히 많은 매출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이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타이거일렉의 공모 청약 경쟁률은 241.92대1이었으며, 공모가는 6000원이었다. 공모 자금은 신제품 개발 및 신규 장비 확보, 노후 장비 교체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액면가: 500원

◆자본금: 20억원

◆주요 주주: 티에스이(44.7%), 이경섭(13%)

◆상장 후 유통 가능 물량: 616만9290주의 25.7%인 158만3000주

◆주관사(한국투자증권)가 보는 투자 위험:

전방산업인 반도체 시장이 정체기에 들어서면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음.

종합 반도체 회사의 투자 계획에 따라 반도체 테스트 장비 업체의 제품 발주 규모가 달라지며, 이는 회사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

모회사 티에스이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크게 낮아지지 않아, 매출처 편중에 따른 실적 변동 위험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