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파문이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도 같은 속임수를 썼다'는 각국 환경 단체의 고발이 잇따르고, 미국 정부는 폴크스바겐 이외 다른 디젤 차량까지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달 18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폴크스바겐이 미국 환경기준을 맞추기 위해 배기가스 배출 소프트웨어(SW)를 조작했다"고 발표한 지 1주일이 지났으나 파장이 더 번지고 있다.

"폴크스바겐 국내 구매 문의 急減"

국내에는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의심 차량이 약 15만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24일 "문제가 된 'EA 189' 엔진 탑재 차량은 유럽 배기가스 배출 기준인 '유로 5' 1.6L와 2.0L TDi디젤차가 해당된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과 아우디는 2009년부터 지난달까지 국내에서 각각 11만4337대와 4만3002대의 2000㏄ 이하 디젤차를 팔았는데 총 15만7339대다. 여기에는 폴크스바겐 브랜드 8종(골프, 제타, 비틀, 파사트, 티구안, 폴로, CC, 시로코)과 아우디 브랜드 6종(A3, A4, A5, A6, Q3, Q5) 등 총 14개 모델이 해당된다.

2016년형 폴크스바겐 골프 차량이 이달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대기국(CARB) 실험실에서 배기가스 배출 테스트를 받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매장마다 '내 차는 문제없는 거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10여통씩 걸려오고 있다"며 "리콜 여부를 묻는 전화도 많다"고 말했다. 중고차 거래 업체인 SK엔카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중고차에 대한 구매 문의는 지난주보다 70% 줄었다.

해외에선 폴크스바겐과 똑같은 속임수를 다른 업체들도 쓰고 있다는 의혹이 속출하고 있다. 벨기에 환경 단체인 '교통과 환경(T&E)'은 "BMW, GM브랜드인 오펠, 프랑스의 시트로엥 디젤 차량들도 실주행 시 질소산화물(NOx) 농도가 유럽 환경기준보다 더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폴크스바겐이 시인한 1100만대에 포함되지 않은 아우디 A8도 실주행 시 Nox 농도가 환경기준보다 22배나 높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폴크스바겐 조작을 규명해낸 미국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볼보 차량 한 대를 실험한 결과, 실주행 시 질소산화물이 유럽 환경기준보다 14배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각국 환경 단체의 의혹 제기에 대해 해당 업체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EPA는 폴크스바겐 외 다른 회사 디젤 차량도 검사할 계획이며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정부도 배기가스 재조사에 착수했다.

독일産 전체에 대한 신뢰도 추락

2007년부터 폴크스바겐을 이끌며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시킨 마르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 CEO는 23일(현지 시각) 사임했다. 하지만 그는 퇴직금으로 2860만유로(약 380억원)를 받을 것으로 알려져 '도덕적 해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후임에는 마티아스 뮐러 포르셰 CEO, 허버트 디에스 폴크스바겐 승용차 부문 CEO, 루퍼트 슈타들러 아우디 CEO 등이 꼽힌다.

카스텐 브르제스키 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폴크스바겐 사태가 독일 경제에 미치는 위협이 그리스 경제 위기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의 초대형 사기극(詐欺劇)이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독일산)' 전체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데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축은 다른 산업에도 여파가 미쳐 독일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2024억유로(270조원)의 매출액을 올려 독일 GDP(3조8500억달러)의 5.8%를 차지하는 '국민 기업'이다. 독일 자동차 산업 종사자(77만5000여명) 3명 가운데 1명이 폴크스바겐에서 일하고 있다.

한편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23일 "폴크스바겐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며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분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