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이모(40)씨는 지난 5월 메르스 사태로 손님이 끊기자, 임차료와 직원 인건비까지 지급하지 못할 상황에 닥쳤다. 그는 20년 전에 가입한 저축성 보험의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보험약관대출을 받기 위해 보험사에 문의했다. 보험사에선 "20년 전 10% 확정금리로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가산금리를 포함해 대출금리는 연 12%가 적용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다급해진 이씨는 1000만원을 빌렸는데, 이후 원리금을 갚지 못해 3개월째 연체 중이다. 보험사에서 보험약관대출을 받은 사람 중에는 이씨와 같은 연체가 많다.

초저금리 시대에 보험사들이 고객이 낸 보험료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약관대출 금리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약관대출은 상한액이 해약환급금의 80%를 넘지 않아 돈을 떼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비싼 금리를 받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약관대출은 은행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바가지 약관대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이 짊어지는 실정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보험약관대출을 판매하는 생명·손해보험사들에 부당하게 높은 금리를 매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출금리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라고 통보했다.

◇약관대출, 연 3조원대 짭짤한 장사

보험약관대출은 보험 가입자들이 자신이 가입한 보험의 해약환급금 80% 범위 내에서 급전을 대출받는 상품이다. 보험약관대출은 크게 금리연동형과 금리확정형으로 나뉜다. 금리연동형은 시장금리에 약간의 가산금리(1.5%포인트)를 더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가 적용된다. 문제는 보험사의 전체 약관대출 51조원 중 절반을 차지하는 금리확정형 대출이다. 금리확정형 대출은 과거 고금리 시절의 확정이율(연 5~10%)에 2~2.5%포인트의 가산금리가 붙어 최대 연 12~13% 선에서 대출금리가 결정된다. 보험사 측에선 "보험 만기 때 높은 금리로 이자를 줘야 하기 때문에 보험금 담보로 대출받을 때에도 돈을 떼일 위험을 감안해 그만큼 금리를 물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해약환급금이 1000만원이면 800만원만 대출해주고, 연체하면 남은 해약환급금에서 이자까지 회수할 수 있는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인데 왜 높은 이자를 매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리확정형 대출에 보험사의 인건비, 사업비 등 충당 명목으로 1%포인트가량의 가산금리를 매기는 것도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미 소비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에 사업비가 반영되어 있는데, 보험약관대출 가산금리에도 부당하게 이를 반영해 과도한 대출금리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의 보험약관대출 이자 수입은 2010년 2조9786억원에서 지난해 3조3038억원으로 11% 늘었다.

◇바가지 금리… 연체율 오름세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생명·손해보험사들의 보험약관대출은 2010년 37조원에서 2014년 말 51조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연체 금액이 2조650억원에서 3조2435억원으로 늘면서 연체율이 4.71%에서 6.75%로 뛰었다. 연체자는 117만명에 달한다.

소비자들이 받는 보험약관대출 약정서에는 보험 상품의 대출이 ‘확정이율+가산금리’로 적용되며, 대출이자를 일정 기간 미납해 대출 원금과 이자가 해지환급금을 초과하면 보험계약이 자동 해지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이런 내용을 잘 모른 채 대출을 받는다. 보험사들은 연체 후 석 달은 지나야 ‘보험이 해지될 수 있으니 원리금을 상환하라’는 안내장을 보내고, 상당수 보험사는 이러한 안내마저 소홀히 하고 있다. 보험계약이 해지되면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내줘야 하는 고금리 이자를 줄일 수 있어 이득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험약관대출을 받을 때 조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보험사들은 소비자들에게 금리확정형 상품으로 대출을 받을 것을 권유해 자초지종을 따져보지 않고 그대로 받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이 여러 개의 저축성 보험에 가입했다면, 5% 내외 금리로 이용할 수 있는 금리연동형 상품을 우선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